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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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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예식은 치유의 목회현장입니다.

단장예식은 치유의 목회현장입니다.

김헌수 목사(꿈너머꿈교회) 성실한 남편의 아내이며 착한 아들 하나를 둔 44살의 젊은 엄마가 삶을 포기했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집안은 물론 교회 성도들까지 엄청난 충격이 되었다. 육신의 아버지가 평소에 딸이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노년의 몸으로 틈틈이 돌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편 역시 회사에 출근을 해도 늘 아내 걱정에 일찍 집으로 퇴근을 하였다. 그리고 소소한 집안일을 챙기며 늘 아내 곁에서 지켜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간절한 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곁을 떠났다. 그동안의 모든 수고와 애씀으로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기에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 아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 안타까움은 더했다. 또 하나 23살의 젊은 청년이 세상을 등지고 인생을 스스로 버렸다. 그는 부모를 떠나서 혼자 성실하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외롭게 지내고 있었던 것을 가족들은 전혀 몰랐다. 그가 떠나고 난 후에야 뒤늦게 알게 되었고 후회한들 소용이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오열을 하며 그 충격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할머니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지만 장례식장 입구에 발을 딛자마자 그냥 쓰러지고 말았다. 부모는 기막힌 현실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친구들은 황당함에 멍하니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바라볼 뿐이었다. 이러한 큰 아픔과 슬픔에 잠겨있는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사자는 물론 그 누구에게 탓을 돌리고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가장 큰 상처와 아픔의 당사자는 사실 본인과 그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피해자이다. 자칫 잘못하면 주변사람들이 또다시 2차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 자살했으니 지옥에 갔다고 단정해서도 안된다. 정말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깊은 상처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할 것인가? 누구에게도 말하고 털어놓을 수 없는 자기만의 숱한 아픔들이 있었을 것이다. 남아있는 가족들의 엄청난 충격과 고통도 말로 다할 수 없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정죄할 수 없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오히려 가해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경쟁사회에서 외롭게 이겨내며 왕따 문화의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했던 것이 너무도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가족은 물론 학교 직장 병원 경찰 법원 국가의 그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해결과 위로를 하지 못하고 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치유상담, 심리치료, 자살예방센터, 여러 관련기관과 교회들이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기가 쉽지 않다. 더 큰 아픔과 상처로 남아있는 가족들을 그냥 방치할 수 없다. 속수무책인 현실에서 그래도 이를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 그 아픔의 현장인 장례식장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 큰 아픔의 가해자가 아니라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현장으로 바꿀 수 있다. 염(입관)이 아닌 단장예식으로 가능하다. 본 투헤븐상조에서 이를 감당하고 있다. 가족들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찬양과 말씀의 진실을 느끼며 감동을 한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화해한다. 새로운 보혈의 능력을 실감한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상처에서 실제로 치유되는 현장이 된다. 이 모든 일들이 부활의 천국환송예식에서 일어난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는 단장예식이다.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 최고의 사랑을 실감하게 된다. 아버지 집을 사모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투헤븐상조를 통한 단장예식에서 구원의 완성과 살리는 목회현장이 되고 있기에 감사하다.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세 분의 아…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세 분의 아버지

이승진 집사(서광교회) 저는 마음속에 세 분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첫째는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시며, 둘째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제 육신의 아버지 이십니다. 마지막으로는 제 신앙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바로 서광교회 전태규 원로목사님이십니다. 2024년 4월 14일 바로 어제 우리 목사님께서는 은퇴하시고 서광교회 원로 목사님으로 추대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제 마음속 신앙의 아버지이신 목사님을 생각하며 글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신대방 삼거리 근처에 위치한 아주 작은 서광교회에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주일학교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계셨으며, 사모님께서 피아노 반주를 해주셨던 기억 또한 남아 있습니다. 그 때에 전태규 목사님께서는 아주 당당한 모습의 청년 목사님으로 기억이 됩니다. 개척교회 담임목사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한 성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남아있습니다. 주일 교회학교를 열심히 다니면서 교회학교 친구들과 사랑과 정을 나누던 그 시절이 제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졸업 무렵 서광교회는 조금씩 부흥되기 시작하였고, 성전도 아주 크진 않지만 멋진 성전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중학생이 된 저는 그 때 축구를 너무 좋아하여 서광교회 축구부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어린이, 청소년들이 교회에 꽤 많이 예배드리러 왔었습니다. 아마 그 시절이 서광교회의 부흥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대학에 입학하며 하나님과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한자와 한문 수업을 너무 좋아하고 잘하여 한문 수업을 선생님께서 저에게 맡기실 정도로 잘 하였습니다. 그 때에 논어, 맹자 등 사서삼경을 보면서 ‘내가 굳이 교회에 가지 않아도 착하게 살면 삶이 괜찮은 것 아닌가?’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불변의 진리를 그리고 그 사랑을 꽤 오랜 기간 잊고 지냈던 것입니다. 제 인생의 방황기에도 목사님께서는 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고, 또한 잊지 않으시고 제게 일이 있을 때 마다 격려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가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 가난하여 차가 없었던 저를 위해 시험장까지 직접 운전하여 “힘내서 시험 잘 보세요”라고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주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직장인이 된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당연히 주례를 목사님께서 맡아 주셨으며, 우리 부부의 앞날을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결혼 후 집을 서울 개봉동으로 이사하며, 잠시나마 집 근처 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나갔을 때도, 목사님께서는 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두 딸이 태어났을 때에도, 목사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 부부를 축하해 주셨습니다. 가정 형편과 아이들의 학업으로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오게 된 저는 참으로 기뻤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닐 제 마음속 신앙의 힘이 싹트는 순간이 그 때 임을 기억하면 지금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목욕탕을 리모델링하여 성전으로 만들었던 그 때의 서광교회는 집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새로 지어진 교회를 생각하며 ‘그래. 사람들이 육신의 때를 벗기려 오던 목욕탕을 하나님께서 새 성전을 주셔서 세상의 때를 벗기고 믿음과 신앙으로 거듭나기를 바라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교회에서 우리 가족은 젊어서부터 너무나 하나님과 교회를 싫어하셨던 제 육신의 아버지 이재웅 성도를 전도하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 때에도 목사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위해 축복 기도해 주셨으며, 병으로 몸이 불편하신 우리 아버지를 위해서도 늘 기도와 사랑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어느날 목사님께서 저를 성가대로 임명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너무너무 당황하였습니다. 저는 찬송도 잘 모르고, 또한 학창시절부터 음악이 너무 싫고, 악보도 잘 보지 못하고 또한 사람들과 함께 반주에 맞춰 찬송을 한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과 목사님의 뛰어난 안목으로 제가 성가대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음악을 잘 모르는 저는 매일 출퇴근 2시간 동안 다음주 성가대 찬양을 반복해서 연습하고, 또 제가 맡은 베이스 파트를 일주일 내내 듣고 따라 부르며 연습을하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출퇴근 하는 것 보다, 찬송을 듣고, 보고, 배우며 출퇴근 할 수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또한 저를 뛰어난 혜안으로 성가대로 세워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목사님과의 추억은 글에서 언급한 것 보다 더 많이 있으며, 또한 목사님께서 제게 주신 사랑은 글로 다 적기에 너무 많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물론 목사님께서 주신 사랑은 우리 서광교회 모든 성도들에게도 똑같을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은퇴하신 목사님께서 앞으로 하실 하나님의 일들이 잘 되고, 또한 영육간에 강건하시길 제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물론 오늘 아침에도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매일 기도할 겁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선물입니다. 그동안 서광교회 담임목사로써 베푸셨던 하나님의 사랑과 그 큰 은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당당하게 전해주셨던 목사님의 그 크신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의 시 구절에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서광교회 성도들은 목사님의 은퇴가 슬프기도 하지만, 또한 다시 만날 그 날을 기약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또한 서광교회가 다시 부흥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44년의 시간동안 담임목사로서 서광교회를 이끄셨던 우리 전태규 목사님의 가장 큰 소망이자 기쁨임을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어제는 누군가를 떠나 보낸다는 것이 슬픈 날이였지만, 하지만 기쁘게 다시 만날 그 날이 기대되기에 오늘은 슬픔을 뒤로하고, 새로 부임하신 담임목사님과 서광교회의 앞날을 위해 기쁨으로 하나님과 소통해야 할 때입니다. 제가 그다지 대단한 놈도 아니지만, 목사님의 은퇴와 원로목사 추대예배를 드리며 이대로 헤어짐은 너무 아쉬워서 몇 글자 적어 보았습니다. 그것이 제 마음속 신앙의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라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전태규 목사님! 건강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늘 함께하시길 믿음의 자식이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장례를 그렇게 하지 말아라!

내 장례를 그렇게 하지 말아라!

김헌수 목사(꿈너머꿈교회) ‘내 남편은 원래 표정이 없는 사람이어요, 지금까지 결혼해 살면서 28년간 제대로 웃는 걸 본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눈물 흘려 우는 것도 없고요.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변할 수 있어요? 얼굴이 바뀌고 표정이 정말 밝아졌어요, 참 신기해요, 수요일 예배 때 말씀을 전하면서 눈물 흘리는 것도 처음 봤어요, 진솔하게 진심을 말하는 것이었어요, 교회 뒤에 있는 빈터를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꿈이 생긴 것이어요. 자신감으로 포부를 밝히고 소망이 생긴 것이어요, 생기 넘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이렇게 변한 것이 참 신기해요’ 2박3일간의 교육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와서 남편이 하루아침에 변한 언행을 보고 아내가 한 말이다. 평소에 장례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남편 목사다. 교회에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기에 앞으로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또 장남으로서 부모님도 걱정이었다. 마침 부활실천신학의 천국환송지도사 세미나 정보를 듣고 참여하였다. 50년이 넘도록 형성되고 만들어진 스타일이 단 2박3일만에 바뀐 것이다. 어떻게 변화될 수 있었는가? 수십 년 같이 살았기에 남편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는데 정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얼굴이 바뀌고, 표정이 바뀌고, 말이 바뀌고, 자신감을 가지고 목회의 비전을 갖게 되었다고 아내가 기뻐하는 것이다. 원래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하고 자기가 생각을 해도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인이 봐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느낌을 말한다. 이렇게 성격까지 확 바뀐 이유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그는 자신있게 말을 한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모릅니다. 알 수 없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와 닿지 않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직접 가서 한번 들어보고 확인해 보세요, 그러면 정말 달라질 겁니다. 열 마디 말을 해도 실감이 나지 않고 잘 모릅니다. 직접 가 봐야 합니다. 복음이 실제가 되는 기회를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계속 말을 이어간다. ‘이것은 사실 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꼭 오는 것인데 나도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이제는 죽어도 걱정이 없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가 죽으면 장례를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꼭 투헤븐상조에서 하는 천국환송의 부활예식으로 하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이 장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의 일이기에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는 내 죽음도 아주 편안하고 홀가분해 졌습니다’ 그렇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꼭 찾아오는 필수이며 예외가 될 수 없다. 지금의 장례식 현실에서 나도 그럴텐데 괜찮은가? 비참하고 흉측스럽다는 생각이 없는가? 꽁꽁 묶인 미라처럼 보이는 내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는 그런 모습으로 장례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기독교장례라고 하면서 묶지 않는 것만으로 다가 아닌 것이다. ‘장례, 고인, 수의, 염, 입관, 발인, 하관, 상주, 유가족, 상복, 납골, 유골함, 명복’ 등의 말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기독교는 말로 고백하는 종교이기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기에 그렇게 말로 시인하면 안된다. 그래서 투헤븐상조에서는 ‘천국환송, 하늘(천국)시민, 단장예식, 안식예배, 환송예배, 부활예배, 큰아들, 예복, 부활함, 홀리캐슬, 승리하셨습니다’ 등의 성경적인 용어로 바꿔서 사용하고 있다. 하나도 바뀌지 않고 고집해온 샤머니즘적인 장례용어를 다 바꿨다. 그리고 용품까지 성경적인 용품으로 바꿔서 부활의 모습으로 예식을 하고 있다. 목사님은 죽음의 어두움에서 밝고 환한 부활의 세미나를 듣고 깨달은 것이다. 투헤븐선교회는 단순한 장례문화 개혁을 넘어서 완전한 복음을 선포한다. 구원의 완성이기에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이 되고 있다. 3일 만에 바뀌고 변화되는 놀라운 능력이 되었다. 부활실천신학을 목회현장에서 실제로 보여주고 적용할 수 있기에 감사하며 큰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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