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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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교회 국내외 선교사역 발자취현재 동아교회는 ‘동아인의 1만 1백 세계비전’으로 1만명 영혼구원, 국내외 1백교회 세우기에 매진하고 있다. 본 교회는 8대 사역으로 천일작정기도회 36년재 13차 진행, 치유 및 상담사역, 전국 목회자 및 사모세미나 사역, 방송·언론·출판사역, 해외선교지 교회건축사역, 국내교회 개척사역, 특수지역 사역 준비, 이웃과 지역 섬김이 사역을 지속하여 진행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동아교회에서 강창훈 목사를 만나 1989년 교회 개척 후부터 2021년 초에 시작되어 진행중인 아프리카 우간다까지 지상명령(마 28:18-20, 행 1:8)을 수행하고 있는 ‘동아교회 국내외 선교사역의 발자취’를 듣고 정리하여 지면에 담아봤다.〈편집자 주〉 ▲ 교회개척 후 선교사역 1989년 교회 개척 후 3개월이 지나고 청장년 출석이 12명이 된 때인 4개월째부터 한 달에 3만원씩 4곳의 선교지에 선교비로 협력 선교가 처음 시작되었다. ▲ IMF때(1998년) 선교사역 국내외 40곳을 선정하여 매달 10만원씩 선교비를 보내며 협력선교를 진행하였다. 그 때 전교인이 폐지를 모아서 예배 때 교회로 가지고 와 보관했다가 한 달에 두 번씩 차량으로 운반하여 판매하고 나온 물질을 선교비에 보태어 사용하였다. 이 폐지모으기운동을 6년 동안 지속하여 전개하고 국내외 선교지에 흘려보냈다. (전 11:1-2) 우리 교회가 한창 폐지모으기운동을 할 때 75세 된 허리가 구부정한 한 어른 여 집사님이 선교비에 보태려고 밤샘하며 열심히 폐지를 줍다가 돌아가셨다. 그 어른 여 집사님이 살아 생전에 가정 심방을 갈 때면 항상 “우리 아들 꼭 기도해 살려 주세요” 라며 간절히 기도를 부탁하셨다. 그 당시 아들은 간경화가 심하여 혈색이 노랗고 건강이 매우 안 좋은 상태로 병원에서도 의학적으로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었다. 그 집사님 아들 본인도 스스로 치료의 가망성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앞으로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하며 자주 낚시터에 가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여 집사님의 간절한 기도의 소원대로 아들은 기적적으로 건강이 회복되었고 현재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로 우리 교회로 인도되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항상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연로한 가운데도 선교비를 보태려고 폐지모으기운동에 밤낮 애쓰며 아들의 생명을 살리려고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던 그 기도제목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열매로 생각되고 지금도 그 때의 감동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 선교지 교회건축 (첫번째 성전건축 이후 사역) A국 1곳, 아프리카 말리 1곳, 필리핀 1곳 총 3곳에 교회건축을 했다. 이 곳에 교회건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교회건축 예산이 당초 계획보다 많이 늘어나고 변동성이 심하여 우리교회가 재정의 투명집행 원칙을 가지고 선교사역을 운영하는데 어려움도 있었지만 새로운 경험과 교훈을 터득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 국내교회 개척사역 선교지 현지교회 건축을 할 때 재정의 투명성과 건축의 공정 진행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사역을 위하여 우리교회 출신 3명의 부목사들을 통해 교회개척을 할 수 있도록 3년 동안 한 명당 5천만원씩 지원하였다. ▲ 인도네시아 선교사역 인도네시아에 속한 티모르섬에 있는 서티모르 소에 지역인 오지에 선교중인 단체와 연합하여 30~50년 이상이 되어 완전히 노후된 교회를 재건축하는 사역으로 총 25개 교회를 계획하고 건축을 시작하여 20여교회가 건축이 완료되고 나머지 5교회는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2021년 초부터 흙으로 지은 교회 건물로 10명 내외로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를 완전히 새롭게 건축해 주는 선교사역이다. 1년 6개월 만에 12교회 건축비를 보냈고 13번째 건축을 위해서 전 교우들이 선교헌금을 드리고 있다. 2022년 7월까지 국내외 선교사역의 열매로 교회 개척을 하고 새롭게 건축한 교회는 총 41교회다. 동아교회는 강창훈 목사와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건축된 아프리카 우간다에 12교회를 건축하고 5교회 헌당식에 참석하기 위해 7월 17일 출국하여 7월 29일 귀국할 예정이다. 문의 : 02-2690-6032, www.dong-a.org ■ 목사님 부부(강창훈 목사와 문경희 사모) 소개 동아교회 부흥성장의 원동력은 예배를 통한 성경 전체인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12번의 강해를 마치고 13차가 진행중인 성경강해와 36년째 13차를 이어온 천일작정기도회의 하루 세 번의 기도운동이다. 강창훈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 및 목회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Reformed 신학교 목회학 박사(D.MIN.)를 거쳐 1989년 동아교회를 개척 후 34년째 시무하고 올해가 성역 40년째이다. 강 목사는 천일작정기도회운동본부 대표(36년째 13차 진행)와 횃불회 월요목회자세미나 강사로 서울, 대전, 대구, 안동, 전주 등 6개 지역에서 수년동안 강의하였고, 초교파 전국목회자부부세미나도 23년간 83차 개최 및 인도했다. 교단에서는 예장 합동 총회 목회자 및 사모 하기수양회 강사로 6회 나섰고, 함북노회 노회장 및 교역자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양천구교구협의회 회장 및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부흥사협의회 대표회장 을 역임한 바 있으며, 신학연구원 4곳 에서 조직신학, 심방학, 전도학, 목회학을 강의하였고 현재는 양천구기독교연합회 회장과 한 장총기도위원장, (사)국제기독교이단대책협의회 연구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천일작정기도회』, 『형통하리라』, 『꽃처럼 너울처럼』, 『별을 헤아리며』 등이 있으며, 2015년~2018년까지 CBS TV 방송설교자로, 극동방송, CBS, CTS TV 간증자로 활동한 바 있다. 문경희 사모는 새가족 심방과 전도, 목회자와 교회를 위한 기도, 상담사역을 통한 성도를 세우는 일에 힘쓰고 있다. 동아치유센터 원장으로 27년동안 치유와 상담으로 섬기고 있다. 예장(합동)총회사모수양회 강사(6회), 횃불회월요목회자세미나 강사 역임(대전·전주·안동)하고 부흥회 및 일일 집회강사, 노회, 지방회 사모세미나 강사와 제주 동아영성원 치유센터 원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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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망의 역할 실천하여 하나님의 참사랑 전하는 교회▲ 참사랑교회 사역 소개 22년 전 문산제일교회에서 참사랑교회로 파송을 받은 나와 같은 교회에서 집사로 평신도 때에 신앙생활을 함께 했던 목사가 있었다. 그가 5년 정도 사역하면서 지금도 남아있는 6명의 일꾼을 키우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캄보디아 선교를 위해 사역지를 옮겼다. 그 후에 부임한 목회자들이 여러 명 바뀌면서 교회가 많이 어려움을 겪었다. 기존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고 6~7명의 성도들이 남은 상태여서 개척을 시켜준 본교 당회에서 교회폐쇄를 두 번이나 결정을 했었다고 한다. 현재 시설장, 권사 등 4명이 간곡히 교회폐쇄 철회를 제안하여 다시 참사랑교회로 시작하게 되었다. 파발교 옆 2층 40여 평의 건물에 전세를 얻어 예배드리며 1~2년이 지난 후 내가 부산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이 곳에 올 형편이 아니었는데 우리교회 권사님의 남편 장로님이 교회를 살리려고 명성교회에서 우리교회로 옮기면서 저에게 청빙요청을 해 왔다. 그 일로 당시 양평대한수도원 여름성회 참석하면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아 사역지를 부산에서 광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그 전까지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부산참사랑교회 담임목사께서 성도가 300명이 되면 성도 3~40명을 분기마다 파송해서 개척을 한다고 기독교신문 인터뷰 첫 부분에 공지되어 292명의 성도였던 때라 기도로 준비하며 곧 개척을 하게 되었던 때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도바울이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고 환상에 마게도냐로 인도하신 것처럼 내가 계획했던 일을 멈추게 하시고 나를 광주로 방향을 바꾸어 가게 하셨다. 이미 부산에서 사회복지사로 지역아동센터 운영을 했었고 푸드뱅크와 관련된 일을 해왔던 터라 교회 교인들 간사들과 함께 지역아동센터와 푸드뱅크 운영을 위해 자격증 취득을 하도록 독려하여 사회복지사 1급 2명, 2급 2명, 요양보호사 5명의 자격을 취득하게 하여 지역아동센터는 6개월 만에 푸드뱅크는 1년 만에 지자체의 인가를 받아 운영을 하게 되었다. 지역아동센터는 시설장 지은정 집사가 중심이 되어 운영을 하고 있으며 푸드뱅크는 시설장 홍인덕 집사와 사무장 홍대연 장로님이 사랑으로 섬기고 있다. 푸드뱅크 설립초기 2년 동안 힘들게 동분서주하다보니 허리 수술 두 번과 어깨 수술 한 번을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초기 2년동안은 지원을 거의 받지 못 하여 기부 물품 원가 기준 5천만으로 시작하여 12년이 지난 지금은 1년에 30억 이상의 기부물품 원가로 늘어나고 300여 명의 광주지역 기초 수급자 등 저소득 가정에 식료품 및 생필품을 지원받아 이웃을 돕고 있다. 지금은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1시~3시에 배분을 하고 있다. 현재 사회복무요원 6명, 공공근로자 2명, 전담직원 2명이 함께하여 운영되고 있다. 참사랑교회 부임한지 12년, 이 곳으로 이전한지 5년이 되어가며 교회는 안정되고 코로나 전에는 70~80명의 성도들로 부흥하고 무엇보다 참사랑푸드뱅크가 자연스레 전도의 접촉점이 되어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일이 감사하다. 우리교회는 코로나19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대면예배를 드리며 3~40명이 온전한 주일 성수를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 참사랑푸드뱅크와 참사랑지역아동센터 운영, 보람, 긍지 푸드뱅크는 교회가 전도자를 세우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자연스레 복음을 전하는 접촉점을 삼으려고 한다. 저도 전도대상(타겟)을 만나면 2년 안에 끝까지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고 베풀어 영혼을 구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20여명을 교회로 인도했으며 처음에 우울증, 대인기피증 증세가 있던 젊은 청년이 전도되어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로 믿음이 자라 지금은 우리교회 청년회장으로 열심히 섬기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12년째 운영되고 있으며 시설장 지은정 집사가 중심이 되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광주 지역에 열악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갖추고 지도하고 있다. 이곳 지역 특성상 고등학교와 대학을 진학하려고 외지로 나가는 학생이 많은 실정이며 500여명을 배출하고 현재 14명이 공부하고 있다. 교회 부설기관으로 아이들이 세상 지식과 더불어 믿음 안에서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지역아동센터는 평상시에는 오전 10시~저녁 7시, 방학 때는 오전 9시~저녁 6시에 시설장, 선생님, 간사 등 6명이 가르치고 있다. ▲ 유튜브에 목사님 엘토 색소폰 연주가 은혜로운데 소개해 주시지요 어릴때부터 음악적 감각이 있어 무악보로 하모니카를 많이 불었다. 조천우 목사님의 도움으로 낙원상가에서 처음으로 트럼펫을 불어보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돈도 없이 외상으로 구입을 하게 되었고 퇴촌에 있는 열린교회에서 7~8명이 플랫과 샵이라는 연주단을 창단하여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1년 뒤 색소폰을 불기 시작하여 양로원, 요양원, 요양병원 등 여러 곳으로 위로연주회를 갖기도 했고 푸드뱅크 주최로 매년 청석공원에서 불우한 이웃 초청 연주회를 6회째 이어져 오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로 연주 모임을 갖지 못하다가 다시 하니엘 앙상블이란 연주 팀에 합류하여 활동 중이며 7월 3일 강원도 홍천 서면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동네 어르신을 초청하여 연주회를 갖는다. 앞으로 요양병원, 요양원, 양로원, 재활원 등 소외된 어르신들과 장애자들을 찾아가 위로와 격려하는 활동을 더욱 더 힘차게 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 ▲ 사역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간증 오륜교회(김은호 목사)에서 진행하는 21일 다니엘기도회에 유튜브방송을 통하여 동참하며 기도하던 중에 마지막 날인 21일째 되는 날에 건물주인이 지금의 건물을 사라고 말을 건네왔는데 그 당시 전세금 6천만원 밖에 없던 우리 교회에 건물을 놓고 그간 지속적으로 기도해 오고 있는 때라 마음에 감동이 오고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때에 응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 운동을 하던 지인을 통해 농협에 근무하던 분이 대출계 직원을 소개해서 그 담당직원의 적극적인 도움을 통해 5년 전에 건물을 담보로 10억여 원을 대출받게 되어 4층 건물 전체를 매입하여 교회와 지역아동센터, 푸드뱅크를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운영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매달 은행이자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하나님이 은혜로 건물을 매입하게 하셨으니 멀지않아 은행대출금도 해결해 주시리라 믿는다. 이제 돌아보니 건물을 갑자기 매입하여 인수하게 된 일도 에벤에셀의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린다. ▲ 앞으로의 비전과 계획 무료급식소·노인대학 등 나눔사역인 복지목회를 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다. 교회 성도는 함께 복지사역을 도우며 일도 하고 사례도 받고 봉사의 기쁨과 보람을 갖게하려고 한다. 앞으로 종합복지관을 인수하거나 사단법인 복지시설을 허가받아 운영하고 더 나아가 요양원도 설립하여 실버시대를 맞이해 노인들을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섬기는 일을 기도하며 준비하려고 한다. 문의:031-8028-8906 목회수기(간증) 부산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배영 목사가 연고도 없는 경기도 광주까지 오게 된 것 꼭 12년 전의 일이었다. 20대 청년시절부터 부산에서 평신도이자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원 등으로 섬기고 있던 교회 권사님의 권고로 37살에 늦은 나이에 신학을 시작했던 이 목사는 모교회에서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 과정을 거치면서 교회 개척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교회에서 함께 집사시절 활동했던 교인이 총신대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아 경기도 광주에 교회를 개척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만 해도 경기도 광주는 낯설기만 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 목회자가 교회 사역을 다른 사역자에게 넘겨주고 캄보디아로 선교를 떠난 후 교회가 폐쇄 위기에 이르자, 이 목사에게 경기도 광주에서 목회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12년 전 이배영 목사는 가족들과 함께 경기도 광주의 교인 6명이 전부인 폐쇄 직전의 작은 교회로 부임했다. 사례는 커녕, 가족들이 먹고 살 생활비도 빠듯한 상황이었기에 이 목사는 교회도 살리고, 가족들도 굶기지 않고, 지역사회 어려운 주민들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장례지도사 등 온갖 자격증도 그래서 마련한 것들이었다. “교회 교인들과 간사들에게 함께 지역아동센터와 푸드뱅크 운영을 하는 것을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함께 공부하고 기도했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해서 지역아동센터는 6개월 만에, 푸드뱅크는 1년 만에 지자체 허가를 받아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교회당 운영하기에도 버거운 때라 푸드뱅크 설비에 관한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같은 지역의 두 분의 목사와 함께 공동으로 참사랑푸드뱅크를 설립했었다. 연 2회 이마트와 광역푸드뱅크 협조로 300여 가구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역도 하였다. 푸드뱅크 사업은 생산, 유통, 판매, 소비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분의 음식들 혹은 생필품들을 기부업체 및 개인에게 기탁 받아 지역 내 저소득 가정 및 사회복지시설(기관)에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실천하는 사역이다. 이 목사가 참사랑푸드뱅크를 설립한 후 매년 광주 지역 기초수급자 등 저소득 가정과 한 부모 가정, 조손가정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 300여 가구에게 식재료와 생필품 등 다양한 기업 후원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매년 인근 청석공원에서 추석명절을 전후해 문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웃들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고, 연2회 이마트와 광역푸드뱅크 협조로 300여 가구의 어려운 이웃을 추가로 돕는 사역도 하고 있다. 푸드뱅크도 지역아동센터도 모두 비영리단체이고, 지자체에서 제공받는 것은 근로자 인건비와 공공근로자 지원 정도에 불과해서 교회 형편은 여전히 넉넉하지 않다. 임미라 집사 간증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중학교 때 쯤부터 주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세상에 속하여 세상에서 방황하며 지내던 중 24살쯤 다시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26살 끝 무렵에 어머니가 계신 참사랑교회를 오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에 와서 아버지 같은 이배영 목사님을 만나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치과에서 6년 정도 근무하다가 사회복지사자격증을 따라는 권유를 받고, 참사랑센터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며, 교회 기관에서 일하면서 믿음이 더 자라났습니다.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센터에서는 지은정 센터장님이 저의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늘 도와주셨습니다. 참사랑교회를 다니고 센터에서 일하면서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첫 주례를 해주셨고 두 아들까지 낳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아이가 참사랑센터에 등록해서 학생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지은정 집사 간증 ‘아가페 참사랑으로 주의 리더를 키우는 교회의 기관이 되자’ 할렐루야! 거룩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세상에서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로 광주에 이사를 오면서 본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그즈음 지역 내 소외된 가정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만든 공부방의 간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체험하며 믿음이 생기게 시작하였습니다. 이배영 목사님이 부임하시고 섬김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공부방에 만족하던 저와 아이들에게 ‘아가페 참사랑으로 주의 리더를 키우는 교회의 기관이 되자’는 비전을 주시고 저를 비롯한 청년들에게 사회복지사가 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지금은 지역 내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아동센터로 탈바꿈하였으며 무엇보다 아이들과 그들의 가정에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죽었던 저를 참사랑교회에 보내시고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는 복된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이배영 담임목사 소개 보다 체계적인 복지사역의 비전 품고 기도 이배영 목사는 강원도 홍천에서 20년 삶, 부산에서 31년 생활, 경기 광주에서 12년 목회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 목사는 베푸는 은사의 달란트를 살려 앞으로 더욱 체계적인 복지 사역의 비전을 품고 기도하고 있다. 그는 지난 12년 동안 참사랑교회와 푸드뱅크·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며 이웃사랑과 섬김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이배영 목사는 현재 광주시기독교연합회 부회장, 기아대책 이사, 광주시발전위원회 상임총무, 광주시목회자축구선교회 단장, 참사랑푸드뱅크 총괄운영이사장, 전국사랑의쌀나눔 감사, 참사랑지역아동센터 대표, 영적각성운동본부 상임총무 및 광주지역본부장, 참사랑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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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선교를 위해 설립한 성령이 운행하시는 교회번성교회는 오직 선교를 위해 설립된 교회로 1991년 7월 21일 경기도 성남시 단대동 2층 30평에서 문금회 목사와 사모, 초등2, 초등3학년 자녀가 첫 예배를 드리며 시작되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 곳에서 3개월 동안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한번은 찬송을 뜨겁게 부르니 다른 교회 교인이 우렁찬 찬송소리에 감동을 받아 교회당에 들어온 적도 있다. 그 교인은 은혜를 받고 비록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동서사방에 정말 좋은 교회가 있다고 널리 소문을 내주었다. 그래서 교회 설립 6개월 때부터 교인들이 나오기 시작하여 예배당이 꽉 채워지고 이곳에서 5년 5개월을 예배드릴 수가 있었다. 그 후 예배당이 비좁아 성남 산성역 인근에 주차장이 있는 4층 50평을 임대하여 이전하고 교회가 부흥되어 나중에 또 50평을 임대하고 교육관 네 곳을 빌려 거기서 15년 6개월을 예배드렸다. 그 당시 성전을 지을 수 있었지만 솔직히 골목교회가 싫어서 짓지 않았고 바른 목회를 지향하여 장로, 안수집사 등 중직이 우리 교회에 나오면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로 돌려보냈다. 모든 교인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온전한 주일 성수를 하라고 가르쳤다. 2002년 3월 복정동 195-1에 대지 337평을 구입하는 은혜를 받았다. 그 대지가 그린벨트지역으로 묶여있어 풀어지면 교회를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10년 이상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 당시 그린벨트 해제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고 시청, 국토부 등 여러 곳에 요청도 하고 이명박 대통령 때 탄원서까지 올리기도 했다. 이 곳을 이미 개발하려고 도지사와 시장이 신도시 계획을 수립하고 그 그린벨트 지역의 땅을 국가가 수용하려고 추진하고 있었다. 그 땅을 하나님이 풀어주시라고 우리 교회를 짓겠다고 기도하며 교인들과 그 곳에 가서 여리고 돌기 땅 밟기도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도 중에 그 땅 앞에 신도시가 건설된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다. 그 환상은 5년 후에 응답된 지금의 위례 신도시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20년의 세월을 보내고 성전을 짓기위해 기도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 마침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2011년 10월 2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산성대로 383번길 14(단대동)에 연건평 600평의 교회당을 매입하고 지금까지 예배드리며 목회하고 있다. 세계에 선교지 교회 설립은 1997년 8월 인도 방갈로에 초대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여, A지역에 이도화자교회, 우심교회, 노아령교회, 마도석진 중심교회, 목농진교회, 홍양교회, 아프리카에 부르키나파소에 임마누엘 초대교회, 시온 초대교회, 윈드또에 초대교회, 이펠세 교회, 코나 초대교회, 여호수아 교회, 윈드 뜬다교회, 그웬데 교회, 필리핀에 안티폴로교회, 캄보디아에 선목교회, 미얀마에 하베스트 교회, 묘택교회, 레고 하베스트 교회, 하비우스 하베스트 교회, 비베리곤 하베스트교회 등 2022년 현재 22 교회를 세웠다. 1997년 인도에 정운삼 선교사 파송, 2011년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김창덕 선교사를 파송했다. 현재 매주 27명씩 구제하고 있으며 25년째 지속하고 있다. 번성교회는 ‘성령이 운행하시는 교회’ 표어 아래 장년 500명 출석, 3부 예배실시, 각 기관 부흥과 활성화, 선교로 미얀마에 교회건축, 구제, 인재양성을 올해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양육훈련은 부산 D12바람을 5년하다가 지금은 자체교재를 중심으로 새가족반 6주, 확신반 5주·양육반 8주, 성장반(일대일 양육) 12주, 품성교회 16주, 중보기도학교 12주, 바이블 톡(무한정) 조직신학의 핵심을 다룬 사도신경 성경공부 8단계 1년 등 다양한 체계적인 양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은 ‘세계에 100교회 개척, 선교사 30명 파송, 학사의 집 설립(차세대 지도자 육성), 1천명 성도’에 두고 온 성도들이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로 교회공간은 지하에 중고등부·청년대학부·유초등부 예배실, 기도실이 있으며, 1층에 사무실, 식당, 코이노니아실, 성가대 준비실, 화장실이 있고 2층에 본당, 새가족실이 있다. 3층에 예배실, 방송실, 자모실, 재정부실, 성가대가운실이 있으며, 4층에 목양실, 5~7층은 셀모임실, 외부는 교역자 쉼터와 창고가 있다. ■ 담임목사 소개 교회다운 교회·목사다운 목사·교인다운 교인 문금회 목사는 미국 남장로교회 순천지부 소속 보이엘 선교사에게 어머니 서원으로 유아세례를 받고 목회자 길을 걷는 중 회의가 느껴 강도사 고시를 합격 후, 삼각산에서 6개월 기도 하는 중에 목사로 소명을 받았다. 그의 목회비전은 ‘100교회 설립, 30명 선교사 파송, 학사의 집 설립, 1,000명 성도’이고 목회철학은 ‘교회다운 교회, 목사다운 목사, 교인다운 교인’이다. 문금회 목사는 미국 낙스신학교 목회학 박사, 전남 보성 장동교회에서 7년 6개월 위임목사로 사역하고 성남 번성교회를 1991년 7월 2일 개척하여 현재 31년째 섬기고 있다. 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평중노회 노회장, WGM 선교회장, GMS 이사, 성남기독교연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 목사의 저서에는 예배를 개혁하라, 하나님의 신호등,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 천국문을 여는 열쇠인 기도, 마귀를 물리쳐라, 아름답게 성공하라, 주일을 회복하라, 웃음이 보약이다, 순종을 체질화 하라, 부활의 소망, 사도신경 성경공부 등 11권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책은 주일이 무너지고 있어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온전한 주일 성수에 생명을 걸라고 ‘주일을 회복하라’는 책이며 하나님이 쓰라고 명령하였다고 한다. 또 마귀에 대한 전문 서적인 ‘마귀를 물리쳐라’가 있다. 문금회 목사는 김선덕 사모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 현재까지 사역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간증 전남 보성 장동교회에서 목회하는 중에 12년 된 앉은뱅이를 고치기 위하여 밤낮으로 6개월동안 기도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이 앉은뱅이가 교회 부흥에 장애물이 되었다. 앉은뱅이를 고치려고 밤낮으로 집중하여 6개월 동안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한 결과 한번은 잠깐동안 일어났다가 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마침내 귀신들이 나갔으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지 그 영혼을 하나님이 불러가셨다. 그러나 목회자로 한 영혼을 살리려고 몸부림치는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영혼사랑과 목양일념에 대한 훈련을 잘 받았고 그 당시 장동교회 주일학교 학생들이 은혜와 도전을 받고 5명이 목회자가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귀신론에 대한 100여권의 책을 읽고 임상실험을 통해 나중에 마귀에 대한 전문서적인 ‘마귀를 물리쳐라’라는 책을 집필출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당시 50명 이상의 어린이들에게 방언은사가 임하며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고 봉고자동차에 확성기를 설치하고 자연부락 인근을 다니며 행 16:31절 말씀을 외치며 신바람나게 최선을 다해 전도를 하였다. ▲ 다음세대 교육 및 활동내용 소개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 교회 초기에 선교사들이 가르쳤던 초학문답(소요리문답 전단계)을 중심으로 교육하고 다음세대가 바른교리(조직신학)에 뿌리내리도록 지도하고 있다. 예수꾼 만들기(초중고), 바른 역사교육으로 인한 애국자(애국애족), 세계를 품는 일꾼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번성교회만의 차별화된 사역 교리(바른신학, 바른교리)에 뿌리내리는 신앙을 위하여 ‘사도신경 성경공부’ 교재를 중심으로 교육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조직신학을 적용한 교리를 가르쳐서 말씀위에 굳게 선 성도로 만들어가고 있다. 애국애족하는 교회, 올바른 역사관(편향된 역사관 배제)을 가진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매주일 ‘주님 다시 오십니다’(마라나타 신앙)라고 고백하며 모든 교인들이 종교인이 아닌 참된 예수의 사람으로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고 있다. ▲ 위드코로나 엔데믹 시대 교회와 예배회복에 대한 평소 소신 및 앞으로의 비전 및 계획 우리 교회는 교인을 많이 모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바른 신앙으로 키워서 바르게 천국에 보내는 것이다. 온전한 성도로 만들어서 바울사도가 정결한 처녀로 그리스도에게 중매하기를 원한다고 했던 그 마음이다. 한 성도라도 바로 양육하여 온전한 천국시민을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코람데오 신앙이 기본 신앙이고 항상 오늘 주님이 내 앞에 있다고 믿으며 생활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 교인도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교회는 두달 동안 매일 릴레이 저녁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히 10:25절 말씀처럼 그 날이 가까워 옴을 볼수록 모이고 기도하기에 힘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본다. 기도하니 성령충만받고 교회가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다. 장기간의 코로나로 교회가 흩어지고 교인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도 갔지만 우리 교회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도 오직 어떤 상황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대면예배를 드리다보니 교회가 특별하다며 못 다니겠다고 떠나고 좀 싸늘한 분위기가 그동안 지속되었다. 이제 매일의 저녁기도회를 통해 교회의 예배가 살아나고 회복되고 있다. 이 팬데믹 시대에 목회해야 할 것은 기도밖에 없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으니라”는 막 9:29절 말씀처럼 오직 기도, 본질로 돌아가서 성경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예배에 생명걸고 그 기본에 충성한 교회가 이 팬데믹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다. 이번 코로나를 통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또한 코로나로 알곡신앙과 쭉정이 신앙을 갈라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비전 및 계획은 번성교회의 영구 비전인 ‘세계에 100교회 설립, 30명의 선교사 파송, 학사의 집 설립, 일 천명 성도’의 목표를 온전히 이루기 위해 오직 말씀과 기도, 코람데오 신앙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문의 : 031-746-1004, www.bunsu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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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눈물과 기도로 이룬 입당,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드리 수 있는 은총에 감사교회를 중심으로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어 앞으로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의 황금어장이 조성될 것으로 보이는 서울 강동구 원중로 18길 72에 은혜광성교회(담임 박재신 목사)가 지난 6월 5일 ‘새성전 입당 및 임직예배’를 드리고 희망찬 새 역사 속으로 새롭게 출발을 다짐했다. 지난 길고 긴 교회의 고난의 터널을 지나가면서도 말씀의 약속을 붙들고 눈물의 기도를 쉬지 않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의 선물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날 행사 전반에 대한 내용을 현장에서 취재하여 지면에 다양한 사진과 함께 클로즈업하여 담아봤다. 〈편집자 주〉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총회 서울강북노회에 속한 서울시 강동구에 소재한 은혜광성교회(담임 박재신 목사)가 지난 6월 5일 오후 본 교회 그레이스채플(대예배실)에서 ‘새성전 입당 감사 및 임직예배’를 드렸다. 이날 임직예배에서 임직 및 취임, 추대자는 장로 임직자 백은천 1명, 집사 임직자 권영수 등 35명, 집사 취임자 모윤성 1명, 권사 취임자 곽호성 등 63명, 명예집사 추대자 강윤구 등 28명, 명예권사 추대자 고경순 등 43명으로 총 171명이 새 직분을 받고 충성을 다짐했다. 1부 예배는 이한영 목사(서울강북노회 부노회장)의 사회로 서누가 목사(남부시찰장)의 대표기도, 오희숙 목사(서부시찰장)의 딤전 1:12-17절 성경봉독, 연합찬양대(은혜광성교회)의 찬양 후 장종현 목사(예장백석 총회장, 백석대 총장)가 ‘본이 되는 직분자’ 제하로 말씀을 전했다. 장 목사는 “모든 성도가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한마음 한뜻되어 아름다운 성전을 완공하고 입당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교회는 단순히 건물이 아님을 생각하길 바란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교제가 바로 교회다. 건물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 있어야 한다. 믿음의 본, 사명의 본, 행함의 본이 되는 직분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목사는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건물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성도들의 눈물 어린 정성과 희생, 봉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각자가 맡은 바 직분을 충실히 감당할 때 은혜광성교회는 하나님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계속 지어져 나갈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어 양승태 장로(건축위원장)의 건축경과 보고 후 박재신 목사(은혜광성교회)가 새성전 건축을 위해 수고한 양승태 장로(건축위원회 위원장), 이영식 대표이사((주)웨크론한텍), 조재헌 현장소장((주)웨크론한텍), 이광호 대표((주)테크원건축사무소), 신옥경 대표((주)하나건축사무소)에게 감사패를 증정 후 내빈을 소개했다. 양승태 장로(건축위원장)는 건축경과 보고에서 “2018년 3월 13일 건축부지를 매입하여 2021년 4월 30일까지 약 17개월이 소요되었다. 공사비는 건축부지 매입, 건축 및 인테리어 음향 등 총 240억 7200만 원이 소요되었다”고 밝히고 “건물 층수는 지하 4층에 지상 6층 연건평 2000평으로 건축되었다. 먼저 지하 4층은 기계실, 전기실, 물탱크, 정화조 등이 배치되었고, 지하 3층 교회학교 초등부 유년부, 소년부, 중등부, 고등부실 등이 있고, 지하 2층도 교회학교 영아 와 유치부 사무실 그리고 방계실, 찬양대 연습실 2개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또 “지하 2층과 지상 1층은 주차장으로 약 78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고 지상 2층과 지상 3층은 대기실, 본당이다. 본당은 인테리어, 음향조명, 영상, 스크린이 잘 설치되어 있어 어느 교회와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며 “지상 4층에 국내외 선교, 새가족부, 청년부 사무실, 권사실, 개인기도실, 신부대기실이 있으며, 소예배실은 예식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 음향 조명 시설을 잘 갖춰 놓았다. 지상 5층은 식당이다. 특별히 식당은 다른 층과 달리 천장 없이 모든 배관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마치 카페로도 연상이 된다”고 보고했다. 덧붙여 양 장로는 “테라스 주변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서 밤에도 이용할 수 있으며, 5층 테라스에 나가서 주변을 보면 아차산과 한강의 자연이 관망이 되어서 경관도 참 아름답다. 유치원, 담임 목사실, 교역자실, 강의실, 사무실, 계수실이 있다. 옥상은 탁월한 뒤 대치대가 설치되었고 조경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우리 은혜 방송 때 모든 성도님들의 쉼터로 잘 활용될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2부 임직 및 취임식은 장로 임직식, 안수집사 임직식, 권사 취임식, 명예집사·명예권사 추대식 순으로 은혜롭게 진행되었다. 백은천 장로를 비롯한 임직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청지기로 교회의 화평과 연합과 성결함을 위해 진력하며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사명 감당을 위해 죽도록 충성할 것”을 서약했다. 먼저 장로 임직식은 전양금 목사(동부시찰장)가 임직을 위한 기도를 드린 후 진동은 목사(서울강북노회장)가 임직자와 교우에게 서약을 받고 안수위원의 안수기도, 안수위원과 임직자가 악수례를 가졌다. 이어 안수집사 임직식은 우용녀 목사(북부시찰장)가 임직을 위한 기도를 드린 후 진동은 목사(서울강북노회장)가 장로와 안수집사로 임직받은 것을 공포했다. 연이어 권사 취임식은 박재신 목사(은혜광성교회)가 취임자와 교우에게 서약을 받고 취임기도 후 권사 된 것을 공포했다. 명예집사, 명예권사 추대식은 박재식 목사(은혜광성교회)가 추대자와 교우에게 서약을 받고 추대기도 후 명예집사, 명예권사 된 것을 공포했다. 3부 축하의 순서는 임석순 목사(한국중앙교회)가 축사를 전했다. 임 목사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이니 정말 축하드리고 싶다. 두 번째는 오늘 임직 받으신 장로님 한 분과 우리 안수 집사님 36명 그리고 권사로 취임하신 63명 정말 축하드린다”면서 “직분을 받으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가신다. 장로가 되니 장로를 만드시고 집사가 되니 집사를 만드신다”며 “임직받은 이들은 지금부터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에 힘쓰라. 믿음이 더 자라고 더 오래 참고, 모든 사람에게 행함으로 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재신 목사(은혜광성교회)의 임직패 수여 후 백은천 장로(임직자 대표)가 답사를 했다. 백 장로는 “먼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목사님과 당회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입당예배와 임직식을 위해 함께 예배드리신 교우님에게도 감사드린다. 또한 은혜의 말씀을 전해주신 백석대 총장 장종현 목사님, 서울강북노회장 진동은 목사님 또한 안수를 위해서 수고해 주신 목사님들 또 늘 기도와 격려로 축복해 주신 박재신 담임목사님과 온 성도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연합 찬양대로 하나님께 오케스트라로 또 이렇게 찬양드린 연합성가대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 “우리 임직자 모두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새 성전 입당과 함께 우리를 쓰시기에 부르셨다고 생각한다. 우리 임직자 모두는 세상에 복이 되는 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며 담임 목사님과 은혜광성교회의 가족들과 마음을 합하여 주님 오실 때까지 최선의 헌신을 다할 것을 하나님 앞에 다짐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또 “이제 우리는 인정받은 이후에도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모든 일의 본이 되며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 데 충성하는 주님께 본이 되는 직분자 종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충성하겠다. 부족한 저희들을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답사를 전했다. 박재신 목사(은혜광성교회)가 인사의 말씀과 광고 후 진동은 목사(서울강북노회장)의 축도로 ‘새성전 입당 감사 및 임직예배’의 모든 순서를 마쳤다. 박재신 목사는 “그냥 그 눈물 다 씻어주시고 아름다운 성전에서 이제는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드릴 수 있는 은총 주신 줄 믿는다”며 “우리 모든 성도님들 위에도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그리고 그런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란다”고 인사의 말씀을 전했다. 은혜광성교회 소개 ▲ 새성전 24시간 기도의 집, 누구나 찾는 교회 박재신 목사는 이번에 입당한 새성전을 ‘24시간 기도의 집’, ‘누구나 찾는 교회’로 계획하고 있다. 박 목사는 “새성전은 하나님이 주셨다. 우리만을 위해서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려면 천호동 지역 주민들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장로님들께 ‘은혜로 지은 성전이니 오픈하자’고 말씀드렸고 성도들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고 말했다. 24시간 누구나 교회에 찾아와 기도할 수 있도록 24시간 관리체제를 구축했다. 기도하고 싶은 사람은 새벽부터 밤까지 교회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실제 은혜광성교회에는 중보기도팀이 있어서 오후 2시, 8시, 10시에 모여서 기도한다. 5층 식당은 주중에는 카페로 활용된다.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은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오후 10시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매일 집에서 적적한 시간을 보내는 시니어 권사님들에게는 “교회에 와서 지내시라”며 사랑방 기능을 약속했고, 맞벌이 부부들에겐 저녁 식사 후 차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을 선물했다. ▲ 한국교회에 모범되어 꿈을 주는 교회 박재신 목사는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며 고난의 터널을 함께 헤쳐온 성도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겠다고, 교회를 지키겠다고 하다가 아픔을 당한 성도들이다.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말씀과 기도를 놓은 적이 없다. 우리 교회 제직들은 정말 특별한 분들이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이제는 한국교회 모범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 말씀대로 사는 성도를 찾는다면 바로 우리 성도님들이다. 새성전에서 할 일이 많다. 한국교회에 꿈을 주는 교회,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는 그런 교회를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만들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의 : 02)485-0815, www.gkwa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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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만이 복음입니다저는 태어나자마자 한 가정에 입양이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권유로 입양하자마자 양어머니께서 바로 임신하시게 되었습니다. 저를 원치 않으셨던 양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잘 사는 집이었을지언정 저에게는 지옥 같은 집이었습니다. 저는 양어머니의 스트레스를 푸는 존재였습니다. 고부갈등의 스트레스를, 집안일에 대한 버거움을, 모든 감정적 스트레스를 저에게 주먹질과 발길질로, 언어적 폭력으로 푸셨습니다. 어린 저는 매일 억지로 해야 하는 집안일과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주먹과 발길질에 맞을까봐 긴장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양어머니가 야차처럼 보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자살이 꿈이었습니다. 집이 싫어 나가고 싶었으나 먹고 사는 것이 걱정되어 가출은 어려웠습니다. 담배와 술을 하셨던 양어머니는 결국 알코올에 중독 되셨습니다. 다른 모든 것보다 알코올은 우리 가정을 가장 힘들게 한 원인이었습니다. 양어머니께선 술을 드시면 갑자기 억울한 일들이 생각난 듯이 온 동네를 다니시면서 그동안 서운했던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다니셨습니다. 논리적이지 않은 생떼를 매번 똑같은 말들을 늘어놓고, 결국엔 풀리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은 옳고, 남은 틀리다는 듯 판단하며 삿대질을 합니다. 그러면서 육중한 몸을 휘청 휘청 거립니다. 넘어져서 남의 집 화분을 깨고 자신의 몸을 깨고…. 어린 저는 그런 양어머니가 너무나 수치스러웠습니다. 곁에 있어야 했던 초등학생인 제가 양어머니의 보호자입니다. 그럼 저는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들쳐 업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오는 길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풀지 못한 분노를 저에게 따귀로 풀면서 누구 말이 맞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알지만 양어머니의 말이 맞다고 합니다. 더 이상 맞기 싫은, 이 순간을 모면하고픈 저의 발악입니다. 울면서 술국을 끓입니다. 이것이 저의 일상이 되어 버립니다. 저는 양어머니가 너무나 수치스러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친구들을 한 번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초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 친구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내내 집에 돌아오면 전화가 울립니다. 너의 어머니 어디 길바닥에 쓰러져 있으니 모시고 가라는 내용입니다. 수치, 창피함은 기본이요, 얼마나 무거웠는지 이 고된 일이 끝나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술 취한 어머니를 들쳐 업은 저를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그런데 왜 제가 수치스러울까요? 어머니가 수치스러워야 하는데 왜 내가 술 취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일까요? 수군거리는 눈빛과 동정의 눈빛도 저는 상처였습니다. 저도 다른 아이들처럼 이 시간에 잠을 자고 싶고, 부모에게 보호받고 싶은데 왜 저는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왜 어머니를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으며 불안해야 하는 걸까요? 술 취한 어머니를 보면 아버지는 그날 어머니를 때리는 날이셨습니다. 술 취한 어머니가 부끄럽다는 이유와 말로해선 안되니 때린다는 이유와 분노를 폭력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일까봐 불안했습니다. 술 취한 어머니를 아버지가 보지 못하게 감추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감춰질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어머니는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이 모든 고통은 아버지로부터 왔다고 아버지께 모든 고통을 토해냅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립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립니다. 절망이 침식합니다. 제 에 하얗게 변한 분노는 푯대를 잃어 갈 곳이 없어집니다. 쌓이고 쌓여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핵물질이 되어버립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칼로 위협하고 호수를 어머니의 입에 넣고 물을 틀어버립니다. 직접 당하진 않아도 그 고통이 그대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당한 어머니는 그 고통을 그대로 저에게 풀어버립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어머니는 저에게, 이것이 가족일까요? 왜 이러고 살아야 할까요?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지옥입니다. 저는 매일 지옥에 살고 있었습니다. 매일 사는 게 불안하고, 숨 쉬는 게 힘든 곳이 가족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작은 것을 소망했습니다. 평범함.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작은 집. 술을 먹지 않는 어머니. 어머니를 때리지 않는 아버지를 원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 가장 싫었습니다. 그 길은 저에게 지옥이었습니다. 그러던 저는 고등학생 때 교회를 다니던 친구 셋을 만나 전도당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이제껏 받아 보지 못한 환영을 받아 보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말도 처음 들어봤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날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 부모님을 속이고 몰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을 알게 된 양어머니의 더 큰 핍박과 반대로 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이리 저리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지만 교회에 다닐 수 있다는 기쁨으로 행복했습니다. 교회 어느 집사님께서 저의 딱한 사정을 아시고 데리고 가서 키워주셨습니다. 집사님의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생활고가 심했던 저는 새벽에 일어나서 알바를 하고 직장에 나갔고 저녁에는 야간대학에 다니며 미친 듯이 치열하게 살았지만 마음만은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나랑만 살 것 같았던 집사님이 재혼을 하면서 저는 또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제 마음속은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항상 날카로운 말과 화로 가득 차 있었던 저는 세상을 원망하고 어른들을 원망하며 나도 성공해서 이 세상에 사람들에게 복수하리라 결심하였습니다. 저의 삶의 목표는 오직 성공이었습니다. 성공을 쫓아 보란 듯이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성공에 만족시켜줄 것 같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저는 결혼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제 뜻처럼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님과 멀어져 교회를 떠났습니다. 임신을 하고 6~7개월 때쯤 잘 나가던 남편의 일본회사가 일본의 금융위기에 맞춰 나라가 때린 세금으로 어쩔 수 없이 부도가 나게 되었습니다. 평생 떵떵거리며 살 줄 알았는데 저는 그토록 사랑하는 나의 아기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남편의 월급이 밀리고 돈이 들어오지 않게 되자 저희 집은 점점 빚더미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 몸이 많이 약했던 터라 애기를 낳고 쓰러져서 일어날 힘도 없었고 애기를 안을 힘도 없이 산후풍으로 고생하였습니다. 남편은 아픈 저와 애기를 귀찮아하였고, 평소 담배와 알코올을 하였던 남편은 그 이후로 알코올중독이 되었습니다. 시어머니 또한 저의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으셨고, 산후 우울증에 걸린 제 앞에서 첫 손자가 보고 싶다고 오셔서는 어린 아기를 업고 시댁으로 가버리셨습니다. 남편은 서울에 새로운 회사를 차리고 저도 잊고 우리 아기도 잊고 단란주점에서 여자들과 술을 마시고 자기 혼자 잘나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어떻게 할 길이 없어 교회에 다시 찾게 되었고 서종열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혼을 상담했으나, 오히려 돌아오는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가 없어서,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면 다시 모든 것을 찾게 됩니다.” 저는 교회에서 성경공부, 새벽기도, 예배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저를 말씀으로 만지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떠나 살 수 없는 영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며 성공을 위해 예수님을 떠나 버렸던 내 모습을 철저히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신만이 그리스도시요,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내안에 들어오셔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셔서 나를 다스려주세요. 뜨겁게 영접 기도하였습니다. 제가 성령을 의지하여 기도하였을 때 나를 위해 양어머니를 용서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저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저처럼 맞아 보셨나요? 저처럼 버림받아 보셨나요? 라고 항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만 하면 용서하지 않음 때문에 다른 기도로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계속적으로 성령님은 너의 양어머니를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절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게 성경 욥기서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자기변호만을 늘어놓았던 욥을 만나 주시며 고난의 의미를 알려 주시기보다 창조주 하나님의 깊고 경이로움을 알려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막에서도 생명과 꽃이 피게 하는데, 그 생명들이 나에게 원망하는 것을 본적이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내가 누구보다 너의 생명을 사랑해서 생명을 지킬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너를 건져 너의 생명을 지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동안 내가 원망했던 것들을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욥처럼 저의 생일을 저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남을 저주하고 원망하던 자였습니다.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을 원망했었습니다. 그런 저의 생각을 바꿔 놓아 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저에게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신 고난의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시며 예수님께서는 저 때문에 무수한 매를 맞고 저를 위해 외면당하시며 철저히 버림받으셨다고 십자가의 사랑을 저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데 저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저를 지우지 않고 태어나게 해주신 친어머니께 감사하기 시작했고, 남의 자녀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데 고등학교 때까지 키워주심에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영적인 어머니를 만나 신앙생활 할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끝까지 나의 생명을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나를 구원하시려고 몸소 그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이 사랑을 경험하게 되니 시어머니도, 남편도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도 남편도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막상 아들과 재회를 하니 엄마로서 해야 하는 일부터 아픈 몸으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막막하였습니다. 아들은 눈도 사시로 돌아가고 자폐증도 앓고 있어서 키우는 내내 저는 속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은 말씀과 예배가 늘 힘이 되었고 목사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기도로 저도 아들도 점점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의지할 분은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말씀으로 저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제게 더 깊은 회개를 하게 해주셨습니다. 저희 가정에 둘째가 생기고 남편의 친한 친구가 일방적으로 회사를 처분하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 일로 인해 남편은 크게 실망하여 알코올중독이 더 심해졌습니다. 저를 전도했던 친구 한명이 저의 삶과 환경을 보며 너는 교회에서 전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하는데 왜 아직도 남편이 알코올중독인 것이냐! 너의 환경과 너의 자녀들은 왜 그러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들었던 말들이 제 자신도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아직 내 환경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지 못할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께 섬기고 봉사하고 전도하는데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두실까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속에 행위적 신앙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성령으로 봉사하지 않고 이렇게 일하면 우리 집이 잘 살겠지. 이렇게 하면 내 남편이 고쳐지겠지 하는 기복적인 나의 마음속 신앙을 보여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제게 질문하셨습니다. 정말 네가 잘 살아보려고 전도도 봉사도 한 것이냐? 저는 문제에 집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에 집중해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이 문제만 없으면 나는 자유로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예수님 때문에 예배하고, 기도하고, 예수님만 예배하고, 예수님만 기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만 만족하고 싶습니다. 저는 남편을 그대로 주님께 맡겨드렸습니다. 남편을 구원하려는 행위는 할 수 있으나 모든 구원의 주인은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남편의 술, 알콜 중독과 담배가 끊이질 않고 점점 중독 증세가 심해져만 갔습니다. 남편의 술을 먹는 모습은 저에게는 저의 원초적인 상처를 다시 겪게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말은 하지 않았으나 저는 매번 남편의 술을 먹는 모습으로 저의 어릴적 상처를 다시 기억하게 되어 상처받는 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보다는 회피하고 싶고 건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커다란 산과 같아 보였고, 결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같아 보여서 심한 우울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남편을 주님께 맡겨드리고부터 우리 가정은 더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할렐루야!) 남편의 눈이 안보이기 시작하고, 손발이 저리는 증상이 생겨 병원에 가니 알코올성말초신경병증이라 하였습니다. 말초신경병증은 상처가 나면 손발이 썩어져 나가는 병입니다. 약을 처방해주어 먹기 시작하자 약의 부작용으로 선망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선망 : 헛것, 귀신, 보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눈에 보임) 남편은 술을 끊는 게 아니라 약을 끊었고 당장 선망은 보이지 않았으나 알콜 중독증상은 심각할 정도로 심해져만 갔습니다. 이렇게 두다가는 정말 남편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알코올중독병원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담임목사님께서 4년 전에 우리 남편 살려보시겠다고 추천해주신 목사님이 생각나 담임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소개를 받았습니다. 서울에 계신 목사님께서 알코올중독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방법을 알려주셨고 이제껏 남편을 위해 해왔던 방법들은 남편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죄를 도와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남편을 사랑한다면 어떤 방법이 남편을 도와주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회사에 전화하여 무급휴가를 받고 시어머니와 함께 사설응급차를 불러 알콜중독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안심도 잠시 입원한지 하루 만에 남편은 알코올중독병원에서 바로 응급실로 이송되었습니다. 피검사 결과가 췌장에 염증수치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응급실에 들어가자 검사 후 췌장염과 간경과로 처음부터 의사선생님께 사망할 수 있다는 말부터 들었습니다. 췌장염의 염증수치가 너무 심해 괴사까지 갈 수 있다 하였습니다. 항생제는 마지막 단계부터 시작하였고, 간경화로 인해 약도 함부로 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우리 목사님의 후회의 간증을 듣고 신앙생활하면서 살아가던 저는 저의 자녀를 불렀습니다. “절대 입 밖으로 아빠의 죽음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자. 그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제까지 우리에게 아빠의 생명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아빠가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해 우리가 최선을 다했지만 그 일에 대한 결과는 모두 예수님께 있고, 우리는 행동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불평할 일은 조금도 없다. 또한 아빠가 좋아져서 건강해지고 그 삶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도 우리는 원망할 수 없다. 그 모든 결과는 주님의 것이다. 아멘입니까?” 우리의 자녀는 모두 아멘 하였습니다. 저는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알코올 중독자들과 알코올 중독자 가정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살겠습니다. 아버지 태산이 변하여 평지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또한 아버지 저의 남편이 저를 도와 주님의 일을 같이 감당케 하시려면 속히 살려주시고 아니면 아버지 속히 데려가주시옵소서. 남편은 병원에서 전선선망을 경험하였고, 망상과 잠을 자지 못하는 증상으로 인해 간호사와 모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일찍 저희를 퇴원시키고 싶어 했으나, 늑막염에 말초신경병증에 간경화에 췌장염에 심지어 췌장에 혹도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계속되는 경고 속에 버티고 있길 6일 결국엔 병원에서는 남편의 횡포에 강제 퇴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울고 있던 저에게 서종열 목사님께서 오셔서 진정한 의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해주셨고, 남편과 시어머니 시아버지까지 영접기도 받게 하시며, 대전에서 공주까지 매일 매일 심방하시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셔서 진정한 의사이신 예수를 알게 하셨습니다. 늑막염, 말초신경병증, 간경화, 췌장염, 췌장 혹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모두가 치료되었습니다. 결국엔 우리 남편은 예수를 만나게 되어 술도 끊고 담배도 끊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내죄사함받고서’ 210장 18번 찬양이 되었습니다. 그 후 남편은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 방언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났습니다.(주님께서 하시면 너무 쉽고 너무 빠르십니다.) 얼마 전에 MRI를 찍었는데 혹은 무슨 자국도 없이 정상이었습니다. 주님께 영광 아멘 지금 우리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로 가정 예배를 드리고, 예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주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우리 가정이 겪은 일로 인해 누구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돕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가정이 되는 것이 저희 가정의 목표입니다. 아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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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운동’ 교회의 본질적 사역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이하 나성)가 최근 3년 만에 충남 예산 스플라스 리솜에서 제67차 총회연차회의를 열고 새 감독으로 윤문기 목사(안중교회)를 선출했다. 이날 새 감독으로 선출된 윤문기 목사는 전체 456표 가운데 305표를 얻었다. 나성은 현장에서 감독 후보를 선정하고, 2/3 득표자가 감독으로 선출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10명의 후보가 경합을 벌여 4차례나 투표가 이어진 끝에 통합 8기 신임감독으로 윤문기 목사가 당선됐다. 윤 감독은 “늘 말씀드린 것처럼, 옆에 있어서 누가 되는 것이 아닌, 옆에 있어 힘이 되는 그런 감독으로 소임을 다하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창간 20주년을 기념하여 나성 총회본부 감독실에서 오는 4월 22일 오후 4시 안중교회에서 ‘나사렛 총회 감독 이·취임식’을 갖는 윤문기 목사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 나성 통합총회 8기 신임감독 선출 소감 많은 분들께서 감독 선출됨을 축하해 주시는데, 사실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과연 축하받을 만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책임감도 느껴진다. 감독임기 3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나면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또 지도자라면 어찌되었든지 자신의 임기 가운데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과 사람, 공동체 앞에서 평가를 받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책임감과 거룩한 부담이 함께 공존한다. 무엇보다 지금 이 위기의 시대에 추락하느냐 아니면 다시 재도약하느냐 하는 중요한 분기점에서 사실은 책임감이 더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에 나사렛 교회들이 어디로 가야할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하는 과제 앞에서 마음과 뜻을 다해서 힘이 되는 감독으로 소임을 다하겠다. ▲ 현재 나성총회(한국총회·국제총회) 주요현황 사실은 나성, 기성, 예성 세 총회의 뿌리는 감리교회다. 나성총회는 닥터 브리지라고 하는 한 감리교 목사를 통해서 미국 LA에서부터 시작이 되었고 또 성서적 성결을 동의하는 그룹들이 연합을 통해서 1908년에 하나가 된 교단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연합, 선교, 교육 그리고 성서적 성결과 같은 부분들을 주된 미션으로 삼고 오늘까지 그 전통을 이어 오고 있으며, 현재 약 164개국에 정회원 기준 261만 정도가 함께하고 있다.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는 교회에 등록을 한 후에, 자신이 멤버십을 갖겠다고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소정의 교육을 거친 후 정회원의 자격을 갖게 된다. 나성은 전세계 164개국에 폭넓게 분산되어 있기에 보다 원활한 관리와 협력을 위해 아시아태평양, 유라시아, 아프리카, 북미, 중미, 남미 등 6개 지구로 나뉘어 있다. 나성은 초창기부터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는 교단이었다. 전세계 나사렛교회의 부활헌금은 전액 국제본부로 보내어 선교를 위해서 쓰여진다. 또한 모든 나사렛교인들은 옥합헌금함에 6개월 동안 모은 헌금을 1년에 두차례 옥합을 개봉하는 제도가 있다. 이렇게 모여진 헌금은 전세계에 선교센터, 학교, 병원을 짓는데 사용한다. 우리 나성 교단의 이름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현재 미국을 통해서 북한 땅에도 들어가서 병원 사역 등의 구제 와 선교의 일을 하고 있다. 요한 웨슬리는 사실 학자, 선교사, 목사였지만 그는 거듭남의 경험이 없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서 모라비안 교도들 집회에 참석했다가, 거듭남의 체험을 하게 되고 성령 안에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되었다. 대한기독교 나사렛성결회도 나사렛의 모든 성도들에게 세가지 질문을 한다.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까(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입니까)”, “성령 안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령으로 일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가지 차별화된 핵심가치(Core Value)이다. 나성 한국총회는 74년의 역사에 비해 그렇게 크게 부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총회는 300개 조금 넘는 교회들로 구성된 가족 같은 공동체이다. 현재 나사렛대학교가 천안에 있으며 재활복지학과, 신학과 등이 있어 재활복지 특성화를 통해서 약 5천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현재 한국총회 내에는 서울, 경동(강원·수원), 경기남(평택·안성), 천안, 남부, 호서 등 6개 지방회가 있다. ▲ 앞으로 나성 한국총회 내 소통은 어떻게 만들어 가실 계획이신지요. 교단 내 모두가 동의하고 공유하고 있는 합의된 원칙(rule)인 장정 및 운영내규를 기준으로 하여 공동체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여 편법과 불법을 막고, 질서있는 원활한 소통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한 인사 및 총회의 제반에 있어서 최고 의사 결정기관인 고문회도 활성화하려고 한다. 교단의 홈페이지에 시스템을 구축하여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며, 인사관리 문제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목회자의 자기개발 내용을 포트폴리오화하여,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공유하면서, 교단 내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갈 생각이다. ▲ 다음세대를 어떻게 올바르게 세워가야 할지 말씀해 주시지요. 다음세대는 교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국가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갖을 수 있는 직업이 없어지거나 줄어들어 취업이 안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3차산업 시대를 위해 대학 교육이 바탕이 되었다면, 4차산업 시대에도 대학이 그것을 뒷받침 해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4차산업 시대에 필요한 학과나 인재상을 위해 대학에서는 기술과 은사개발과 더불어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인성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는 5월 23일이면 나사렛대학교 이사장 임기를 마치지만, 대학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사람을 만들어서 사회에 진출시켜야 하는데 그에 맞는 학과들이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보면서 계속 함께 고민할 것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학과와 거기에 걸맞는 인재상을 바탕으로 특성화함으로써, 대학도 살고 졸업생들의 사회진출도 원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과 산업이 함께하는 산학협력이 더욱 절실하다. 또한 국가적으로는 다음세대를 세우기 위해 조기 결혼 및 출산 장려를 위해 부동산 가격을 내리고, 청년층에게 원가 주택 공급 정책을 확대하여 가정의 안정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안중교회는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양육까지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섬기고 있다. 그 예로 교회 내 임신부터 출산까지 함께 기도하는 중보기도팀이 있으며, 다자녀 가정에는 장학금도 지급하기도 한다. ▲ 코로나19 이후 나사렛 교회들의 예배회복 및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목회방향 교육의 역할은 거슬러 올라가면 유대교라는 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하나님의 조에(ζωή)”라는 생명을 가지고 나타나신 것에서 찾아야 한다. 그 하나님의 생명 운동이 초대교회를 세웠고 그 예수님을 통해 사도적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다가 중세시대에 종교화되다 보니 거기서부터 마틴 루터, 칼빈을 통해 다시 생명운동으로 각성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교회가 세월이 지나면서 변질되고 무뎌지는 바람에 요한 웨슬레의 종교개혁 운동이 생명운동으로 다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감리교회가 조금 더 본질에서 벗어날 무렵, 다시 그리스도의 생명 운동으로 환원하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 나사렛교회의 태동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코로나19 상황에 그리스도의 생명운동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성 한국총회가 74년 역사가 되었다. 이제는 종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운동을 해야 할 때이다. 성령 안에서의 영성을 체험하고, 그 성령 안에서 동행하는 삶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 생명이 이 팬데믹이나 이 어려운 상황도 결국은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운동이 다시 전개되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교단은 모든 교회들이 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교육이나 현실적으로 도와야 할 부분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 교단은 목회자 연금제도에 있어서 두 차례의 실패를 겪어서 이런 부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안정시켜서 은퇴 이후에 목회자 안전망을 구축해 줄 수 있느냐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은퇴한 선배 목사의 장례제도를 교단적인 차원에서 구축하는 문제도 검토 중이다. 이는 평생 목회에 헌신하셨던 목회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것이며, 또한 교단 내 목회자들의 소속감을 고취하는 일이기도 하다. 4차산업혁명 시대, 알파고를 동경하는 새 시대가 열리면서, 인간이 지적싸움에서 알파고를 이기는 것은 어려워질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성품, 감성 등의 아날로그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교회 교육이 필요한 시대이다. 성결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이제는 교회만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안에서 각 가정을 건강하게 세움으로써, 교회와 가정이 다음세대를 살리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이 시대에 함몰되지 않는 교회와 가정과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교육의 카테고리를 구축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나성만의 차별화된 점 목회자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야기된 목회자 부부가 일자리를 찾게 되는 현실 속에서, 목회자의 정체성 혼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선후배들이 함께 뜻을 모으고 있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온라인 교육을 통하여 목회자의 도전의식, 정체성에 대한 재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학생은 급격히 줄어들고 교사들이 부족하거나 없는 경우의 작은 교회들도 많이 있다. 그래서 온라인교육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여 교사부족으로 발생하는 교육의 부재를 온라인 및 오프라인교육 병행으로 안정되게 관리하려고 한다. 나성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 “성결한 삶”을 통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거룩한 삶에 도전하는 예배에 임한다. 말씀 중심의 설교를 통해, 감동과 성령의 역사, 제단 초청의 시간을 통해 통회와 자복이 일어나며 온전한 회개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악한 마귀의 세계를 이길 수 있는 작은 제자로서 세상 가운데에 파송 받는다. ▲ 본인 및 안중교회 사역 간략 소개 군대에서 의가사 제대를 하고 투병 중에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교회에 다닌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았는데 목사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두 번이나 들었다.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었기에 결국은 목회자가 되었다. 돌이켜보니 늘 하나님은 앞서 계셨다. 내가 병들었을 때도 그랬고, 심지어 문 열면 바로 교회가 백미터 앞에 있는 곳으로 이사할 때에도 그랬다. 목사가 되는 과정과 그 이후에 교회를 개척하고 또 지금의 안중교회에 부임하는 과정에도, 나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께 이끌렸다고 믿는다. 물론 이번에 감독에 출마하는 것은 그 뜻을 알려야 하는 상황이다보니, ‘감독에 나오겠습니다’라는 표명이 불가피했다. 지금까지 나성 안에서 44년 동안 여러 사역들을 했다. 교단 내에 70개 교회를 개척하는 ‘91 전도대회’ 실무를 하고, ‘50주년 기념대회’와 ‘60주년 기념대회’를 총괄기획 했으며, 현재는 필리핀에 있는 대학원 부총장을 맡고 있다. 안중에 내려와 대광교회를 개척하여 15년 동안 사역한 후, 안중교회로 청빙을 받아 와서 17년 동안 목회를 하고 있다. 안중교회 역사는 교단의 역사보다 1년 빨리 시작이 되었고 올해가 75주년이다. 우리 교회는 선배 목사님들과 수많은 믿음의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서, 초창기부터 시작된 교회 개척의 열정으로 지금까지 국내 18개, 해외 8개 교회를 세웠다. 간혹 분리 개척이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교회개척과 함께 성도들을 개척선교사로 파송하는 분리 개척을 해왔던 것이 이제는 안중교회의 하나의 영성(Spirituality)이 된 것 같다. 안중교회의 사명(존재목적)은 ‘예수를 믿어 생명을 얻고 풍성한 삶을 나누는 생명공동체’(요 10:10)이다. 우리 교회가 지역 복음화를 위에서 끊임없이 지역과 교회들을 섬길 수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주일에 1부나 2부 예배를 드린 후에, 교단을 초월해서 인근 개척교회에 가서 함께 예배드리며 봉헌하고 또 그 교회에서 필요한 일을 섬겨주는 사역이다. 평균 한 달에 2~3개 교회를 방문하는데, 이를 위해 섬기는 ‘장로 권사팀’, ‘찬양대’, ‘선교회’ 등의 다양한 그룹이 있다. ■ 나사렛 총회 감독 이·취임식 안내 일 시 : 2022년 5월 22일(주일) 오후 4시 장 소 : 안중교회(경기도 평택시 안중로 84번길 47) 문 의 : 031-681-3558 이번 행사는 형제 교단인 기성·나성·예성이 함께하여 진행된다. 설교는 기성교단을 대표한 총회장 지형은 목사를 대신하여 김석년 원로목사(서초교회)가 말씀을 전하고 예성교단을 대표해 총회장 이상문 목사(두란노교회)의 축사와 그밖에 영상축사의 순서가 있으며, 격려사는 전례대로 나성교단 내 원로목사들이 전한다. 이날 특별한 순서로 나성통합 이후(20년)의 전임 감독 6명이 신임감독을 안수하는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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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치료에 새로운 장을 열다!발달장애아동 전문 교육가 정경운 목사와 가정의학과 의사 조용수 원장이 발달장애인들을 위하여 두 손을 잡았다. 15년간 발달장애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연구하며 달려온 시절의 정경운 목사 의사로서 30여년간 아픈 사람을 고치며 달려온 조용수 목사 이들의 만남은 특별한 계기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발달장애인 교육을 하는 정경운 목사는 교육만으로 발달지연 학생을 회복시키는 것에 시간적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하나님께 함께 할 수 있는 의사를 동역자로 요구하는 기도를 해왔다고 하며 이 만남은 기도의 응답이라고 말하며 감사를 고백했다. 또한 조용수 원장은 의사로서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등 경험이 풍부한 하나님 앞에 신실한 목사이기도 하며 정 목사로부터 발달장애 학생들의 아픔을 전해 듣고 흔쾌히 동역을 허락 했다고 한다. 이들의 만남은 발달장애 치료와 교육의 만남으로 해석 될 수 있으며 주로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던 발달장애인들이 항전신성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범주에서 치료가 시작되고 그 뒤를 교육으로 뒷받침하는 특별한 치료의 현장이 생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 목사는 양주 조용수의원에서 통사 치료를 하고 있는데 통사는 통증사냥이라는 말로 전신의 기능을 다스리는 특별한 치료법으로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지 않는 치료법이라고 한다. 주사요법이지만 자연치유에 가까운 방법으로 통증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부작용도 없고 치료 효과가 아주 높은 방법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발달장애 학생들의 어려운 환경에 도움을 주고자 항정신성약물을 배제하고 자신이 가진 의료기술을 총동원하여 신체적 기능치료로 출발하여 발달장애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정 목사는 이미 발달장애 및 발달지연 학생들을 위한 교육시설인 자연체험 학습장을 3년에 걸쳐서 만들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교육시설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곳이 바로 한영자연과학학교이며 이곳은 발달장애교육에 최고의 시설임에 틀림없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파주시 법원읍 수작골길 245번지에 다다르니 주변 산세가 편안하고 조용한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여기에 발달장애아들을 치유하며 교육하는 자연체험 학습장을 겸비한 한영자연과학학교다. 파주 수작골 사랑의교회가 후원하는 순수 민간교육 시설이다. 교장인 정경운 목사. 발달장애아를 위한 사역에 15여 년을 보냈다. 근육질의 건강한 체격에 구릿빛 얼굴인 그의 시선은 인터뷰 내내 오가는 아이들을 쫓는다. 학교 마당에 번호를 새긴 의자들이 둘러앉아 있고 축구나 놀이를 할 수 있는 운동장, 아이들이 발바닥 자극을 통해 걸으며 지각능력을 키우는 워킹 틀, 빛을 바라보며 시신경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각훈련장, 주의집중력을 위한 시설, 학습능력 상승을 위한 숫자판, 심장훈련을 할 수 있는 수압훈련장, 미니 동물원 등 다양한 시설을 자연속에 만들었다. 이 시설을 만드는데 꼬박 3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힐링센터, 오감 교육 등 구체적인 회복프로그램으로 치유한다. 인공폭포가 흐르는 시각훈련장을 곁에 두고 계단을 올라가면 힐링센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선 족욕, 원적외선 건식사우나, 마사지, 마이크로 온열 기기 등 첨단 온열 시스템을 통해 발달지연 학생들의 낮은 체온을 회복시키는 능력을 키운다. 이같이 이곳에선 상당히 구체적인 훈련들이 펼쳐진다. 문화예술분야 교육으로 자율성을 회복한다. 아담한 강당에선 아이들이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학습실로 들어서니 자원봉사자인 몇 분의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그림지도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움직임이 없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공간 전체가 발달장애인의 교육을 실시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음을 그들이 회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온다. ▲ 고칠 방법이 없다는 발달장애 극복해 나가는 환경치료 “발달장애는 고칠 방법이 없다는 게 통념이다. 선천적으로 뇌의 기능에서 문제가 생겨서 발생하는 건 고치기가 힘들다. 그러나 환경적 요인에 의한 발달장애는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 정 목사는 “해가 갈수록 환경문제로 인한 발달장애 아동들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안타깝다”라고 말한다. 발달장애란 무엇일까? 발달장애는 출생과 성장기에 뇌 발달에 문제가 발생한 질환이다. 지적·사회적·신체적 기능이 손상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발달장애는 크게 ‘전반적 발달장애’와 ‘지적장애’로 나뉜다. 전반적 발달장애는 다시 자폐성 장애, 레트 증후군, 아스퍼거 증후군, 소아기 붕괴성 장애, 비정형성 자폐성 장애 등 5가지로 구분한다.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뇌 발달 이상과 관련된 신경해부학적 원인 △신경전달물질과 연관된 생화학적 원인 △유전 그리고 임신 중 출혈 △고령 임신부, 미숙아·저체중아 등 산과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아쉽게도 현재까지는 발달장애를 완벽하게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조기에 발견해 운동 물리치료, 놀이치료, 심리치료, 언어치료, 인지학습치료 등 특수교육을 통해 인지기능과 자기관리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따라서 두뇌계발 가능성이 열려있는 만 5세 이전에 교육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 나이를 떠나 확대되는 초등부 이상의 발달장애아들의 교육현장 한영자연과학학교에선 초등학년 이상의 아이들만 교육시키고 있다. 그 중에는 5세 미만에서 제대로 대안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도 꽤 많다. 그러니 이곳에서 발달장애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그만큼 회복이 더 어렵다. 그러나 정 목사의 생각은 일반적인 의료계와 다르다. 그는 의학적인 분야도 공부를 나름 많이 했다. 발달장애의 원인이 단순히 뇌의 문제가 아니라 심장의 문제도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장 기능이 약하면 근육기능이 미발달하고 안구근육과 청각근육 등 오감 능력의 발달이 더뎌진다는 근본 원리를 발견했다. 의학적으로 증명된 건 아니지만 그가 15년 가까이 발달장애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그가 체득한 진리로 심장을 치료할 의사와 함께 하기를 기도했고 그 만남이 조용수 의사라고 고백했다. 아이들의 심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법원리 수작골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는 심장 기능을 튼튼하게 하는 훈련을 많이 한다. 운동과 놀이다. 그걸 도심에서 하긴 힘들다. 그가 공기 좋고 마음껏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법원리 수작골을 택한 이유도 그렇다. 그는 치료의 원리를 성경에서 발견해 실천한다. 상담을 통해 장애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는데 우선이며 원인을 근접 규명하고 난 후 부터 의사의 치료와 학교의 교육이 병행되는 시스템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 ▲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봉사 또한 2022년 5월 가정의 달에는 발달장애인 가정과 함께 하는 이벤트를 준비 중 이라고 한다. 5월 한 달간 발달장애인 가정을 돕기 위한 자선 상담과 부모 코칭을 실시하기로 하고 합력하는 조용수 의원, 캐다다 바이오 전문회사인 Eastwood사, 교육전문 기업인 (주)포디랜드 등과 함께 한영자연과학학교의 발달장애인 교육시설을 이용한 코칭을 실시하며 이 코칭은 부모가 자녀상담을 받으면 자녀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방법을 코칭해주고 학교에서 3시간 동안 직접 부모가 교육을 하는 시스템이다. 이 코칭은 5세 이전의 아동들에게는 미래를 바꾸는 기회가 될 것이며 단 한 번의 참석이 아동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고 말하며 원인과 교육방법을 알고 부모의 정확한 교육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될 것 이라고 말하며 매주 토요일에만 함께 사회적 봉사로 무료코칭을 진행한다고 한다. ★ 발달장애 또는 발달지연인은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다. ★ 한영자연과학학교 주소: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수작골길 245 ★ 문의 : 031-959-8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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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도 건강도 피 생식으로 집에서 가끔 3일만 금식1992년도에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망미리 167-3에 터를 잡고 에덴동산 생식원을 세워 운영하고 있는 신실한 크리스천인 박순자 권사(올해 81세). 박 권사는 현재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열정과 건강을 가지고 지금도 직접 트럭운전을 하면서 논밭농사 2만평을 지으며 젊은이 못지않게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 젊을 때에 하루라도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되는 생활을 하다가 생식을 먹고 생기 넘치는 살게 되어 이후 직접 땅을 구입하여 화학 비료를 주지 않고 유기농 토비를 사용하여 농사를 짖기 시작했다. 현재 곡물과 채소, 과일 등 80여 가지 이상 농사를 지어 건조시킨 다음 생식으로 만들어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그동안 5천여 명 이상이 생식을 구입해 먹었는데 수많은 사람이 병을 고치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박 권사는 “생식은 산성체질을 알칼리성 체질로 바꿔주고 다른 것일 일체 먹지 않고 생식만 3일을 먹으면 피가 새롭게 교체되어 건강이 살아나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질병도 건강도 피 생식으로 집에서 가끔 3일만 금식하면 건강이 회복될 수 있다. 황폐한 세상에서는 식탐을 이겨야 마지막 때 주님께서 준비하신 만나 생식을 먹을 수가 있다"고 강조했다.〈편집자 주〉 “요즘 유기농 제품들이 유행이지만, ‘진짜 유기농’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생명까지 바칠 각오로 직접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 사명입니다.” 에덴동산 생식은 건조기와 1회용 포장지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추수한 찰현미, 서리태콩, 약콩, 동부, 팥, 흑미, 마, 다시마, 연근, 인진쑥, 솔잎, 김, 표고버섯, 통밀, 우엉, 미역, 셀러리, 케일, 컴플, 비트, 사과, 야콘, 산더덕, 생강 뿌리채, 감, 브로클리, 양배추, 순무, 파프리카, 도라지, 홍화씨 등 80여 가지 이상의 곡물, 야채, 과일을 보일러와 선풍기를 활용해 자연건조해서 제조한다. 놀라운 것은 80여 가지를 직접 유기농으로 재배하여 농사지은 것으로 생식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박순자 권사는 재배한 곡식들을 말려 종류별로 저온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생식을 먹고 싶어하는 이들이 찾아오면, 직접 각 사람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그에 따라 배합비를 달리하여 만들어 준다. 간이 약한 사람에게는 간에 좋은 재료들을, 비만이 있는 사람에게는 비만에 효능이 있는 재료들을 사용한다. 이 모든 과정은 박 권사가 직접 하고 있다. 박 권사가 생식 이름을 ‘에덴동산’이라고 지은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태초의 상태로 우리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오염된 공기와 땅 속에서 화식과 화학비료, 농약과 제초제, 방부제, 화학조미료, 오염된 소금 등으로 변질된 양식을 섭취하고 있기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박 권사는 ‘태초의 양식’을 회복할 열쇠를 하나님 말씀에서 찾고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1-12)” 이처럼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유기농 곡식들을 기르고 섭취할 수 있도록 하셨다. 유기농 재배를 시작한 것은 1994년부터였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박 권사의 ‘진짜 유기농’ 재배는 2001년부터 가능해졌다. 사람들이 ‘자기 소견대로’ 만들어낸 식생활 문화가 아닌, 하나님께서 태초에 허락하신 창조의 뜻을 찾아 부지런히 노력하고 연구해 온 결실이다. “아무 생각 없이 오염된 식품을 먹다 보면, 우선 피가 산성화되고 피곤하며 복부에 비만이 생기고 점점 의욕이 없어집니다. 음식을 조금만 섭취하여도 배가 부르고 비만은 더욱 심해지며 온 몸이 오염되어 자신도 모르는 질병들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병원을 자주 가야 하고, 약을 먹으면 온몸의 세포들이 빠르게 죽게 되어 의학적으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나고 맙니다.” 박순자 권사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망미리 일대에 조성한 ‘에덴동산’은 산을 개간해서 만든 청정 논밭에 각종 식물들을 재배했다. 이런 오염되지 않은 토양을 만들기 위해 몇 년간 땅을 살리는 작업을 먼저 했고, 지금도 매년 내리는 산성비를 중화시키기 위해 숯을 사용하고 있다. 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레 17:11)”는 말씀처럼 ‘피’를 중요시한다. 우리가 먹는 식품들은 입을 통과하는 순간 피가 되고, 그 피는 온몸의 장기를 1주일 가까이 돌아다니면서 우리 몸에서 각종 작용을 관장한다는 것. 박 권사 주장의 초점은 ‘산성화’에 있다. “산성화된 피를 가지고 살아가면, 모든 질병들이 그대로 활동합니다. 하지만 산성이 중화된 중알칼리성 피로 회복되면 질병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피가 건강하면 메르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도 옮지 않고, 상처가 나도 큰 아픔 없이 사라짐을 임상 연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밥 대신 먹는 에덴동산 생식은 한 끼만으로도 피가 맑아짐을 느끼고, 그렇게 중화된 피는 어떤 바이러스도 물리칠 힘을 갖게 된다고 박 권사는 강조했다. 피가 깨끗하면 염증 발생이 중단되고, 염증이 사라지면 아픔도 없어진다는 것. 박 권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1천년은 살 수 있도록 만드셨는데, 세포들이 죽어가면서 몸속 장기들도 하나둘씩 병들어 사람들이 1백년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순자 권사는 또 ‘지나친 열을 가해 만든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60도 넘는 열을 가하면, 아무리 좋은 유기농 곡식일지라도 우리 몸에는 좋지 않다는 것. 전문가들도 50도 이상의 열에는 효모와 효소가 사라지고 죽어 버리고, 요리 과정에서 더욱 파괴된다고 이야기한다. 말기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으로 에덴동산 생식원을 찾은 이들은 밥 대신 생식으로 영양을 섭취한다. 박 권사는 “한 끼만 밥 대신 생식을 먹어도 몸이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증언했다. 박 권사 자신도 무릎이 아파 수술 직전까지 갔지만 생식 덕분에 회복됐고, 지금의 나이까지 별다른 아픈 곳 없이 지내고 있다. 복수가 찬 상태로 에덴동산 생식원을 찾은 암환자들도 생식으로 붓기가 빠지고 상태가 호전되는 경험들을 하고 있다. 박 권사는 자궁암, 위암으로 고생하면서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던 사람이 생식을 먹고 지금도 건강하게 살고 있는 등, 에덴동산 생식원의 생식을 먹고 건강을 찾고 병이 회복된 경우가 수없이 많다고 한다. 병원에서 주는 약과 생식을 함께 복용하더라도, 환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합병증’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박 권사는 “그동안 건강이 악화되어 일반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이들도 에덴동산 생식원에 와서 며칠간 생식을 먹으면 3일 째부터 눈빛이 달라지고 스스로 밖에 나와서 산책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 건강이 회복됨을 느낄 수 있다”면서 “일주일 동안 3회를 먹어보면 비만이 해결됨은 물론, 몸에 생기가 도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실한 크리스천인 박순자 권사는 “돈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아파 고생하는 분들의 심정을 알기에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성도들이 건강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도록 돕기위해 하는 것”이라며 “저희 에덴동산 생식은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만들고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먹어야 병도 이길 수 있다. 그러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찾아와서 희망을 가지고 돌아간다.”고 했다. 문의:에덴동산 생식원 주소:경기 양평군 지평면 매방골길 30-10 ■ 박순자 권사 인생 간증 및 본인소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셨던 건강 회복을 위해 ‘유기농 농사’ 고집 박순자 권사의 인생이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1969년, 박 권사는 세 아이와 함께 서울 상도동의 쪽방을 얻었다. 아이들에게 방을 내주고 나면 누울 자리가 없어 박 권사는 밤을 새워 아동복을 짰다. 밤을 새가면서 아동복 50벌을 짜주었는데 불합격이라면서 업자가 돈을 주지 않기도 했다. 박 권사는 그 때 잊을 수 없는 한을 가슴에 간직하게 된다. 3만원을 가지고 1년을 살아야 했던 시절, 30원을 주고 물국수를 사면 한 솥에 푹푹 끓여 건더기는 아이들이, 국물은 박 권사가 먹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섯 살 난 아들이 옆집 아이가 빵을 먹는 것을 침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은 박 권사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그녀를 때리면서 “엄마는 바보야, 엄마는 바보야, 나는 돈 벌면 빵만 사먹을래요”하면서 울었다. 박 권사는 빵 하나 사줄 수 없는 어미의 마음은 눈물이 아니라 뜨거운 피가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듯 목이 뜨겁고 답답했었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던 박 권사는 하나님의 축복이 찾아왔다. 평소 바느질 실력이 좋았던 그녀에게 이웃집에서 아이들 옷에 수를 놓아달라고 주문을 한 것이다. 박 권사는 솜씨 좋게 수를 놓아 700원을 받았다. 그 동안 받아볼 수 없었던 큰 돈이었다. 그 돈을 들고 청계천, 남대문 시장을 들러 구경을 하니 온 천지에 돈 벌 수 있는 것만 보였다. 우선 적은 돈을 가지고도 할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들 모자를 짜는 일이었다. 박 권사는 이틀 밤을 새면서 모자를 짜 남대문에 2,700원에 팔았다. 그 돈으로 제일 먼저 빵을 사고 또 실을 사서 집에 돌아왔는데, 지금도 행복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박 권사는 그 이후로 편물학원에 다니면서 모자 디자인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를 했고, 직접 디자인한 모자에 특허를 받아 두 달 만에 집을 살 수 있었다. 박 권사는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노인교육학 2년을 마치고 또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정식 입학은 아니지만 강의라도 듣겠다고 신학교에도 갔다. 그러던 중 양로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경기도 양평에 2만여 평의 땅을 사게 됐는데, 박 권사는 우연히 옆에서 공부하던 양로원 원장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된다. 그 분은 “양로원을 할 수 있게 큰 땅을 달라”고 기도했고, 박 권사는 1,000평의 땅을 그 분에게 헌물했다고 한다. 박 권사는 또한 양로원을 하고자하는 소원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박 권사가 아닌 다른 이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고 했다. 박 권사는 기도 가운데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생식원을 만드는 것이 소원이었다. 성경 창세기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수백 세까지 장수하는 구절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박 권사에게 태초의 양식을 그대로 재현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에덴동산’을 재건하라는 비전을 받았다. 에덴동산 생식원의 땅은 2만평이나 되는데 박 권사는 “이 많은 땅이 왜 필요할까”의문을 가졌는데 지금은 땅이 모자라 더 사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은 손수 농사를 짓지 않으면 전부 농약, 비료, 제초제를 주기 때문에 오염된 식품을 먹게 된다고 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셨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박 권사는 유기농 농사를 철저하게 고집하고 있다. 박 권사는 8세부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이 성장하였으며 지금까지 50여년을 쉬지 않고 하루의 일과를 매일 하나님께 보고드리는 기도 일기장을 써오고 있다. 그곳에 기도내용과 그림도 그려 넣고, 별도로 사진을 찍어 보관관리하고 있다. 앞으로 이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박순자 권사는 슬하에 자녀는 2녀 1남을 두고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하여 텍사스에 사업을 하고 있고, 박 원장의 남동생 역시 미국에서 사업을 크게 하고 있는 재벌이고 한국에서도 사업을 번창하게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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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맡기신 일은 과연 무엇인가?〉* 34년 전, 1988년 10월 1일 부천시 심곡동에서 처음으로 교회개척을 시작하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된 단독목회였다. 부교역자로서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과 사역이 시작된 것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는 것을 회상한다. 오직 구령의 열정만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하였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그 모습이 예뻤든지 새벽에 교회 출입문에 쌀이 몇 차례 놓여 있었다. 새벽기도회에는 소천하신 김금례 집사님이 늘 참석하였다. 기도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했다. 이듬해 봄부터 사랑교회 부속 사랑선교원이 시작되었다. 그 시절엔 선교원이 인기가 있었다. 처음 개설한 사랑선교원에 원아들이 꽤 많이 왔다. 참으로 좋은 분을 선교원 선생님으로 보내주신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매주 한 번 원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일이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다. 일산 ‘능곡사랑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육전도사로 섬겼던 일은 큰 힘이 되었다. 사랑선교원에서 원생 자모들을 초청하는 발표회를 준비하였다. 원생들을 승합차로 데려다주는 일로 인하여 자모들과 자연스레 친숙해졌다.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자모들은 나에게 “전도사님”이라고 호칭을 하였다. 발표회 날, 내가 인사를 하면서 짧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 시간도 주님의 은혜였다. 불과 교회 개척 1년이 못되어 교인수가 원생들 숫자만큼 늘어났다. 희망이 보였다. * 1991년 5월 25일 목사 안수를 받는 날에는 나보다 성도들이 더 기뻐하였다. 당시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 경기서지방회 목사님들이 안수위원으로 힘써주셨다. 안수위원이었던 조○○ 목사님이 내게 조언하겠다며 들려준 이야기가 나의 목회여정을 바뀌도록 하였다. 전도사로서 이만큼 교회를 부흥시켰으니, 이제 목사가 되었으니까 보다 더 큰 꿈을 가지라는 것이다. 사랑교회에 고작 50명 밖에 수용을 못할 상황인데, 새로운 장소에서 목사의 권위로 교회를 개척하면 분명히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그 선배 목사님의 말에 인간적인 욕망이 꿈틀거린 것이었다. 마침 신학교 동기 목사님이 자기가 후임으로 오고 싶다는 것이다. 당시 건물주가 보증금을 500만원 올려 달라는 요청도 있었기에, 가장 쉬운 길을 선택한 것이 3년마다 교회를 또 개척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작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11번의 개척 가운데 교회가 없었던 자리에 개척을 해서 여덟 군데 교회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현재 깨닫고 고백하는 한 가지는 목회의 주최가 어디까지나 ‘나’였다는 것이다. 좌충우돌 우여곡절 끝에 커다란 변화의 기회를 만났다. 목회자 복음학교였다. 그 후로부터 목회의 주최는 성령 하나님이셨다. 내 계획이나 목표 따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냥 그대로 행동하는 목회가 시작된 것이다. 무조건 말씀을 따라 액션을 취하였다. 놀라운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에게 새로운 별명이 하나 생겼다. ‘무대책이 대책인 목사’가 된 것이다. 가족들이 볼 때는 ‘답답한 목회자’였던 것이다. * 2014년 1월 23일,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택시전도가 시작이 되었다. 2012년 5월 25일, 아홉 번째 개척한 효성동 2번 종점 열방교회를 개척한지 20개월. 월세를 두 달 밀렸더니 건물주는 여지없이 교회를 비워달라고 하였다. 그 무렵 감사하게도 국토순례전도단 김완섭 목사님(거여동 새소망교회)을 알게 되었고 김 목사님의 후원을 통해 택시전도가 시작되었다. 7년 동안 전도용 ‘말씀소책자’를 무려 7만권을 무료로 제공받은 것이다. 30년간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박수무당을 택시 손님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에게 복음을 전한 일이 국민일보에서 기사로 소개를 하여 CBS ‘새롭게 하소서’에서 연락이 와서 김완섭 목사님과 함께 출연하기도 하였다. 5년 전에 광주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을 더 넘기게 되니까 기독교방송 ‘새롭게 하소서’ 제작진에서 또 연락이 왔다. 그리하여 ‘택시선교사 김정우 목사’ CBS 실화극장 드라마를 촬영하게 되었고, 완전 생소했던 ‘유튜브’를 알게 되었고 새로운 ‘복음의 통로’를 갖게 된 것이다. 현재 유튜브 조회수가 22만이 되었다. 게다가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운영하는 CGN TV ‘나침반 맞춤특강’ 촬영팀 PD로부터 특강 2개를 부탁받게 되어 제1강 ‘진짜 나는 누구인가?’ 제2강 ‘복음 실은 네 바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가 있다. 전혀 몰랐던 유튜브가 조금씩 친숙해졌고, 주일예배 때 설교를 녹화해서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벌써 3년이나 되었다. 택시전도를 하다가 승객들에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종교는 다 똑같지요. 무슨 종교든 믿으면 좋잖아요”라는 얘기였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유튜브 ‘열방교회 말씀특강’을 비롯해서 ‘세상종교와 기독교는 다르다’를 추가로 올려놓았다. 나 개인적으로는 기독교를 세상종교에 포함시키는 것에 동의를 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열어놓으신 영원한 ‘산 길’이요 ‘유일무이한 생명 길’이 바로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 매순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며 책임져 주셨다는 사실에 참 감사하다. “터키에 단기선교를 다녀와야 되겠다”는 성령 하나님의 감동은 내가 달구벌협동조합 택시를 운행할 때였다. 200만원이 넘는 자비량 경비도 전혀 없었고 거기에다 20여일 택시회사에 납부해야 될 사납금은 더 큰 문제였다. ‘중보기도팀’에 기도제목을 부탁을 하고 모든 일을 주님께 맡겼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손길이 나타나기 시작을 했다. ‘인형극 달인’으로 알려진 도바울 선교사님이 50만원을 보내주셨다. 경산에서 한의원을 경영하는 집사님이 그 무렵 대구 열방교회에 출석했는데, 여행경비를 헌금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달구벌협동조합 이사장님과 경영진을 찾아가서, 내가 택시전도를 하기 위하여 택시를 하는 목사임을 알고 계시지만, 이번엔 터키에 17일간 다녀와야 하는데 사납금을 얼마 정도 준비하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목사님! 그런 문제는 신경쓰시지 말고 무탈하고 건강하게만 다녀 오십시요”라는 것이다. 역시 중보기도의 위력이었다. 또한 대구시 신매동 골목 교회에서 사월역 대로변으로 교회를 옮길 때도 마찬가지다. 보증금도 문제였고 시설비 경비도 문제였지만 건물주가 불교 신자였다. 그렇더라도 ‘교회이전은 확실하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건물주의 마음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그분이 매주 유튜브 ‘송내열방교회 주일예배’를 듣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구 칠곡지역에 사는 이병주(정소영)집사님 부부가 기도를 하던 중에, 성령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시설비 1.000만원까지 헌금한 것이다. * 단독목회를 시작한지 34년, 지난 주 춘계정기노회에서 노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왜 여태껏?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3년마다 다른 장소로 가서 교회를 개척하는 까닭에 임원이 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갖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자성어 가운데 ‘시종여일’ ‘초지일관’이 있다. 신학교에 입학할 때 가졌던 마음을 잃지 않으면 그는 참으로 행복한 주의 종이 될 것이다. 뜨거운 복음의 열정을 갖고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와 다름없이 영혼구원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목사들은 복 있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참으로 행복하며 오늘도 기쁘고 즐겁게 택시전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주님의 공생애는 오직 전도로 일관된다. 말씀을 가르치고 병자를 치유하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목적은 모두 다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라는 것을 성경은 선언한다. (막1장38절)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뒤, 막중한 전도와 선교의 사역을 믿는 자들에게 위임하셨다.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엄중한 주님의 명령이다. 사도 바울도 복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엄히 명하였다. (딤후4장1-2절)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 택시전도를 위하여 동참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인정받고 칭찬받는 믿음의 주인공은 전도에 힘쓰는 사람들이다. 인천 송도신도시 포스코 신축아파트 모델하우스 방문객들을 위해 준비했던 물티슈가 분양 완료가 되었기 때문에, 남은 항균물티슈를 택시전도에 활용하라고 제공해주신 강희성 장로님을 비롯하여 택시전도 후원금을 매월 보내주시는 한영길 권사님, 그리고 부개동 연합기독교방송(박찬영 목사)에서 전단지에 넣는 껌을 계속 지원해주고 있다. 70세 나이에 택시전도를 하고나면 온몸이 너무 피곤해서, 며칠 전에 피로를 풀어주는 안마의자를 알아보러 갔다가 안마의자 가격을 보고 그냥 돌아섰다. 실제로 택시 사납금에 대한 부담 때문에 과로를 하는 경우가 참 많아서였는데, 그래서 개인택시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무척 고맙다. 바라기는 유튜브를 통해서 메시지 동영상을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풍성히 누릴 수 있게 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한다. 송내열방교회 김정우 목사 유튜브 (택시선교사 김정우 목사) (송내열방교회 주일예배) (열방교회 말씀특강) (CGN TV 나침반 맞춤특강 김정우 목사) (세상종교와 기독교는 다르다) (짧은 메시지와 큰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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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사랑 세계선교센터 세계선교 현황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인도 땅에 많이 뿌리워지고 복음이 전파되도록 방과 후 교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주안에서 키우고 계신다. 또 그들로 인하여 부모들이 예수께로 나아오고 있다.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로 힘든 가운데 있으나 인도에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인도에 영혼들을 추수하고 계신다. 처음에(2019년) 방과 후 교실을 할 때는 예수 믿는 학생수가 약 200명 가량이었으나 2년이 지난 지금은 약 900명의 학생들이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있음이 조사되었다. 즉, 힌두교가 배경인 인도에서 이제 학생수의 약1/2이 예수를 믿고 있다. 현재 인도 우리 선교센터에서 60개의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학생수는 현재 약 1,800명 이고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방과 후 교실 운영비로 $3,489이 나갔으며 우리나라 돈으로 약 430만원이 교사 월급과 어린이 간식비로 지불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고 일하시는 분이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60개의 방과후 교실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로 뛰며 헌신하는 현지 목회자와 그를 보조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또한 매달 우리 선교센터에서는 인도 펀잡주의 26명의 신학생들의 식비로 $500을 매달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곧 빈민가의 과부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음식을 공급할 예정이다. 많은 과부들이 예수를 영접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린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 4:35) 또 이번에 우리 주님의사랑 세계선교센터에서 방과 후 교실 G3-6을 운영하고있는 목사님의 집에서 예배드리던 것을 집 바로 옆에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5,000 (한 개인이 헌금하심)을 지원하여 교회가 지어져가고 있다.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린다. 지붕공사까지 하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고 계신다. 또한 우리 주님의사랑 세계선교센터에서는 다음의 여자 목사님의 교회를 짓는 것을 도우려 한다. 여기 아래층에서 먹고자고하는 집인데 계단을 올라와 2층에 교회를 짓고자 한다. 벌써 반 정도는 벽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더 이상 경제사정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도 우리가 약 $5,000을 도우려 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 확장되어질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우리는 교회 짓는 것을 도우는 일을 계속 해 나가려고 한다. 우리의 상은 천국에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7-58) 60개 방과후교실, 우리의 꿈나무들은 인도를 변화시킬 미래의 주인공들이다. cafe.naver.com/llwmc(네이버 카페 ‘주님의사랑 세계선교센터’ 검색)